
교회는 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를 기념한다. 성음악을 소개하는 지면이지만 이번에는 그림과 함께 시작한다. 영국 화가 앨버트 슈발리에 테일러(Albert Chevallier Tayler, 1862~1925)가 그린 〈로욜라에서 요양하는 이냐시오〉다.
흰 셔츠 차림의 이냐시오 성인이 침상에서 상체를 세운 채 있다. 다리는 부목으로 고정되어 있고, 무릎 위에 책이 있다. 둘러싼 사물들은 그가 추구했던 생애를 증언한다. 장검과 갑옷은 용맹함, 곤틀릿은 무기를 쥐던 손, 군화와 박차는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던 기사였음을 상기시킨다. 투구에 달린 화려한 깃털은 도상적 의미에서는 허영과 과시를 암시하는 기물이기도 하다.
둥근 사운드홀인 로제트가 세 개나 있는 화려한 류트는 궁정의 사랑과 세속적 여흥의 표상이다. 꺼진 촛불과, 포도주가 담긴 유리잔은 쇠약해진 육체와 감각적 삶의 덧없음을 환기한다. 바니타스 정물의 어법이 성인의 회심 장면으로 들어온 셈이다. 화면 오른편에는 열쇠를 든 성 베드로 그림이 있고, 아래 궤짝에도 작은 열쇠가 꽂혀 있다. 이냐시오는 베드로 사도에 대해 각별한 신심을 가졌고, 성인의 전구를 통해 회복했다고 믿었다.

이 상징물들이 증언하는 삶은 무엇일까. 이냐시오가 살았던 16세기 초는 칼과 창 같은 전통 무기와 총포·대포 같은 화기가 공존하던 시기다. 전장에는 새 병기들이 등장했지만, 이냐시오의 사고는 칼과 창, 말과 갑옷으로 대표되는 기사도적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기사 문학에 심취했고, 고귀한 신분의 여인을 섬기며 무훈을 세우는 환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한 일화는 그런 이냐시오의 사유를 보여준다. 몬세라트로 향하던 길에 한 무어인이 성모 마리아의 출산 후 동정에 의구심을 표하자, 그는 이를 성모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뒤쫓아 단검으로 해할 마음을 품었다. 이는 성마른 충동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냐시오가 이상화된 여성에게 헌신하고 그녀의 명예를 칼로 수호하는 중세 궁정식 사랑, 기사도적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1521년 팜플로나 방어전에서 그를 쓰러뜨린 것은 도검류나 창이 아닌 포탄이었다. 기사도적 상상력과 포격전의 현실이 한 사람의 몸에서 충돌한 순간이다. 과학사가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화기의 등장이 전쟁의 방식은 물론 부상의 성격까지 바꾸었다고 지적한다. 칼과 창이 절상과 관통상을 남긴다면, 총탄과 포환은 살과 뼈를 파열하고 분쇄했다. 몸을 절개하고 뼈를 맞추며 봉합하는 외과의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냐시오의 몸은 이런 변화의 충격을 고스란히 겪었다. 포탄은 한 다리를 완전히 부쉈고, 다른 다리도 심하게 다쳤다. 의사들은 어긋난 뼈를 다시 부러뜨려 접골했다. 다리가 짧아지고 돌출부가 생기자, 그는 튀어나온 뼈를 잘라 내는 수술까지 받았다. 오늘날 초기 절골술 사례로 거론되는 시술이다.
변곡점은 병상이었다. 이냐시오는 요양 중 기사도 소설을 찾았지만, 받은 책은 작센의 루돌프가 쓴 「그리스도의 생애」와 「황금전설」 계열의 성인전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이었지만, 그는 차츰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마주하게 됐다.
이처럼 이냐시오의 회심은 완전한 취약성에서 비롯되었다.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독일어 ‘대지(Grund)’를 인간이 발을 딛고 선 ‘근거’이자 ‘기반’으로 읽는다. 포격은 그가 땅을 딛고 서던 다리를, 기사로서 그를 지탱해 온 물리적 근저를 파괴했다. 다리가 으스러진 곳에서, 그가 지금껏 좇아온 세계관이라는 지반 역시 무너졌다. 스스로를 떠받치던 육체적·정신적 토대가 무너진 순간, 회심의 씨앗은 바로 거기서 싹트기 시작했다.
「영신수련」 234항을 되뇌어 본다. “받아 주소서, 주님. 저의 모든 자유와 저의 기억과 지성, 저의 모든 의지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받아 주소서.” 이에 선율을 붙인 미국 현대 작곡가 로젠(Luke D. Rosen)의 성가 〈받아 주소서(Suscipe)〉는 소박한 아카펠라로 자기 봉헌의 노래를 들려준다. 몸과 세계가 산산이 부서진 자리에서 자신을 바치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되돌려드린 사람.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그곳에 서 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