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8일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이다. 대표적인 교부이자 신학자로 기억되는 성인이지만, 그의 생애에는 음악과 연계된 인상적인 장면도 여럿 남아 있다. 흥미롭게도, 한 작곡가는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회심에 큰 영향을 미친 암브로시오를 연달아 두 곡에 배치했다.
빈과 파사우에서 활동한 아우프슈나이터(Benedikt Anton Aufschnaiter, 1665~1742). 그는 1703년 여덟 곡의 교회 소나타를 묶어 「감미로운 현악의 조화(Dulcis fidium harmonia)」를 펴냈다. 앞의 네 곡에는 서방교회의 네 교부 그레고리오,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예로니모의 이름을 차례로 붙였다. 그 가운데 제2곡은 〈성 암브로시오(S. Ambrosii)〉, 이어지는 제3곡은 〈성 아우구스티노(S. Augustini)〉다.
두 곡을 연이어 듣고 있으면 밀라노에서 있었던 오래전 만남이 떠오른다. 젊은 아우구스티노는 당시 밀라노 주교였던 암브로시오의 강론을 들었고, 387년 부활 전야에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두 사람의 인연에는 성음악도 깊이 얽혀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에서 세례를 받은 무렵 밀라노교회에서 들었던 찬미가와 노래를 떠올린다.
“당신 교회에 감미롭게 울려 퍼지는 찬미가와 시편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며 그 노랫소리에 얼마나 깊이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그 소리들은 제 귀에 스며들고 있었고, 진리는 저의 마음에 배어들고 있었으며…”(「고백록」 IX.6.14.)
그의 서술에는 암브로시오가 이끌던 밀라노교회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었다. 당시 황후 유스티나와 암브로시오 사이의 갈등으로 신자들이 성당을 지키며 밤을 새웠다. 이때 사람들의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찬미가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고 아우구스티노는 기록했다. 동방교회의 관습을 따른 이 방식은 이후 밀라노교회에 자리 잡았다.
세월이 흐른 뒤, 성인은 ‘신앙을 되찾던 처음, 교회의 성가를 들으며 쏟아냈던 눈물’을 다시 떠올린다. 이제 그는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선율은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돕지만, 때로는 내용보다 소리 자체에 더 미혹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음악에서 오는 쾌감의 위험성과 유익함의 체험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고 썼다.(「고백록」 X.33.50.) 그는 음악이 신앙에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동시에 그 힘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가 「음악론(De musica)」을 별도로 집필했다는 사실도 이런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당연하게도, 아우프슈나이터의 소나타에는 가사가 없다. 〈성 암브로시오〉가 흐르고, 이어서 〈성 아우구스티노〉가 시작된다. 두 곡 사이에서 밀라노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아도 좋겠다. 한 사람은 노래하는 교회를 이끌었고, 다른 이는 그 노래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늘날에도, 두 이름은 현악 선율 속에서 나란히 되살아난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