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을 비우고/우주의 중심으로 걸어간다/텅 빈 가운데/아무도 아무것도 없는/안으로 가는 길은/마음이 깨어나는 길/어둠을 다 거두고/밝게 피어나는 시작의 길/세포 하나하나까지도/활짝 깨어나/새로 태어나는 길/천지에 마음의 빛/뿌리며 간다”(시 <빛을 찾아서>, 방혜자)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60여 년 동안 빛을 탐구한 고(故) 방혜자(1937~2022)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열리고 있는 ‘방혜자 -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전시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마련된 회고전으로, 그의 주요 작품 67점과 아카이브 자료 200여 점을 소개한다. 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와 파리 시립 세르누치박물관 소장품 등 그간 국내에서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도 대거 전시된다.
특히 전시의 도입부에서는 샤르트르 대성당에 설치된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4점 중 하나인 <빛의 탄생>의 재현작(2019)이 관람객을 맞는다. 빛과 생명, 사랑, 평화를 주제로 한 연작 중 하나로 본 전시에 앞서 작가가 평생에 걸쳐 탐구해 온 빛의 세계를 나타낸다.
그에게 빛은 단순한 광학적 현상을 넘어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주제였다. 어린 시절 병을 앓으며 요양을 위해 산사에서 머문 경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기억,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접한 서로 다른 문화와 자연은 차츰 그의 작품 안에서 ‘빛’이라는 언어로 모였다. 빛이 지닌 종교적·영적 성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작업이 바로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다.
샤르트르 대성당과의 인연은 프랑스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그는 1961년 국비유학생 1호로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였다. 그는 당시 학생 순례로 대성당을 처음 찾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프랑스 문화부는 2018년 심사를 거쳐 방혜자의 작품을 샤르트르 대성당의 현대 스테인드글라스로 선정했다. 네 개의 대형 창에는 빛과 생명, 사랑, 평화의 메시지가 담겼다. 작가는 2018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1964년 프랑스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당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향을 받은 신부가 본명인 ‘혜자’를 세례명으로 정해줬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그림 그리는 것도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한다”며 샤르트르의 작품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널리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빛의 탄생’, ‘하늘과 땅과 손을 잡고’, ‘빛을 심으며’, ‘빛으로 태어나는 길’ 등으로 구성된 전시에서는 1960년대 초기 추상회화에서부터 말년까지의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5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월요일 휴관. 관람료 2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