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교황 중 이름에 ‘대(大)’ 호칭이 붙은 이는 단 세 명이다. 성 대 레오 1세, 성 대 그레고리오 1세, 성 대 니콜라오 1세다. 그중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590년부터 604년까지 교회를 이끌었고, 593년경에는 로마를 위협하던 랑고바르드족과의 협상에 나서며 평화의 수호자로도 존경받았다.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을 맞아 여러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어본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그레고리오 1세가 이 성가들을 직접 작곡했다기보다, 후대에 전례 성가의 권위가 교황의 이름과 결부되었다고 본다.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는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이다. 그는 1921년에 완성한 피아노곡 〈그레고리오 선율에 의한 세 개의 전주곡〉을 대규모 관현악곡으로 수정하고 한 곡을 추가해 〈교회의 창(Vetrate di chiesa)〉을 완성했다. 1927년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된 작품은 〈이집트로의 피신〉, 〈성 미카엘 대천사〉, 〈성녀 클라라의 아침기도〉, 〈성 대 그레고리오〉 네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 때문에 레스피기가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직접 보고 작곡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음악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후 종교적 표제가 붙었다. 특히 〈성 대 그레고리오(San Gregorio Magno)〉는 그레고리오 성가 〈천사 미사(Missa de Angelis)〉의 글로리아 주제를 장대한 오케스트라로 확장한다.
편성부터 압도적이다. 대규모 목관과 금관, 현악에 징 계열 타악기인 대·중·소 세 종류의 탐탐까지 가세한다. 레스피기는 다채로운 악기군을 한꺼번에 내보이지 않고 천천히 출연시킨다. 저역에서 호른이 제시하는 주제가 발전되고, 타악기가 공간감을 만들며 오르간이 울리면, 옛 선율은 어느새 천상교회를 형상화하는 듯한 규모로 변모한다.
제목의 ‘Magno’를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다. 이탈리아어 Magno는 ‘대(大)’, ‘위대한’이라는 뜻이다. 옛 단선율 하나가 수많은 악기의 색을 입고 웅대한 음향으로 구축된다. 소리로 그레고리오의 ‘위대함’을 묘사한 셈이다.
레스피기가 그리는 교황은 친숙한 성인의 초상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이는 대 그레고리오라는 이름이 표상하는 교황권의 존엄함과 교회 전통의 유구함을 연상하게 한다.
기묘한 경외감도 스며든다. 독일 신학자 오토(Rudolf Otto)는 인간이 거룩하거나 초월적인 것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을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라고 불렀다. 이 곡이 자아내는 정감 역시 친근함보다는 청자를 압도하고 전율하게 하는 숭고함에 가깝다.
곡의 웅장한 종결부에 매료된 이들도 적지 않다.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ELP)’는 라이브 공연 마지막에 〈성 대 그레고리오〉의 피날레를 사용하기도 했다.
6세기 교황과 이어진 옛 성가가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가의 손에서 거대한 관현악으로 재탄생되는 순간은 경이롭다. 오랜 전례와 교회의 기억이 장엄한 음향으로 솟아오르는 시간. 〈성 대 그레고리오〉의 ‘Magno’는 그렇게 음악 속에서 완성된다.
▶ 〈성 대 그레고리오〉를 차용한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라이브 공연(13분 38초부터)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