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우리나라에도 번역·소개되었던 역사소설 「임프리마투르」에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아토 멜라니(Atto Melani, 1626~1714). 그는 유럽 왕실을 누비던 카스트라토 가수이자,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비밀 정보원이기도 했다. 그의 생애에는 노래와 정치, 밀사 임무와 첩보가 함께 했다. 가상 인물처럼 보이지만 무려 실존 인물이다.
동시대 네덜란드에는 콘스탄테인 하위헌스(Constantijn Huygens, 1596~1687)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의 부친이다. 시인이자 외교관이었던 그는 류트 연주자이기도 했다. 그는 영국을 방문했을 때 제임스 1세 앞에서 연주했고 이런 말을 남겼다. “류트, 접견실로 들어가기 위한 나의 열쇠여.”
음악학자 폴 오데트는 “류트 연주자는 자주 스파이나 이중 첩자로 이용되었다”라고 말한다. 나지막한 음량을 가진 류트는 왕이나 최고위 측근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연주하기 좋은 내밀한 현악기다. 한마디로 이는 정보원에 접근하기 최적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음악은 궁정 깊숙한 곳으로 사람을 데려갔고, 때론 외교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 이런 시대에 작곡가와 외교관, 가수, 성직자 이력을 한 몸에 지닌 사람이 있었다. 아고스티노 스테파니(Agostino Steffani, 1654~1728)다.
스테파니의 삶을 한 가지 직함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로 활동했고, 작곡을 공부했다. 뮌헨 궁정에서 일하다 1680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하노버로 옮겨 여러 오페라를 썼고, 외교 임무도 맡았다. 브뤼셀과 뮌헨을 오가며 협상에 참여했으며, 주교품을 받고 작센 지역 대목구장까지 올랐다.

그의 첫 출판 작품은 성음악집이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인 1674년 로마에서 펴낸 「저녁기도 시편집(Psalmodia vespertina)」이다. 같은 시기 스테파니는 별도의 성음악도 작곡했다. 1673년 11월에 완성된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Laudate pueri)〉가 그중 하나다. 시편 113편을 바탕으로 한 이 곡은 오늘날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 박물관의 필사본으로 전한다.
아홉 성부로 쓰인 곡이지만 독창, 이중창, 삼중창과 합창이 번갈아 나타나고, 때론 두 합창이 합쳐지면서 음향의 크기와 밀도가 달라진다. 적은 수의 성부가 중창처럼 나서며 선율들이 서로를 모방하고 화답하며 얽힌다. 훗날 스테파니의 이름을 널리 알린 ‘듀엣(실내 이중창)’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실제로 스테파니는 듀엣의 대가였다. 곡을 듣다 보면 궁금증도 생긴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 상대를 붙잡고 싶은 조바심, 질투와 희망, 체념과 격정이 작품 속에서 계속 교차하기 때문이다.
이후 주교가 된 사제가 사랑과 관련된 온갖 감정을 어떻게 이토록 세밀하게 그려냈을까. 바로크 시대 작곡가에게 인간의 여러 정감(affetti)을 표현하고 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은 중요한 덕목이었다. 스테파니는 이런 면에서 탁월한 거장이었고, 그의 이중창이 유럽 전역에서 큰 명성을 얻은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에도 그의 음악적 특기가 곳곳에서 보인다. 여러 목소리가 맞물리고 다시 합치되며, 텍스트에 섬세한 표정을 드리우는 감각. 사랑의 애틋함을 노래할 때도, 시편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때도, 그는 음악과 가사로 사람의 마음에 와닿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가수이자 작곡가, 사제이자 주교. 때로는 외교관으로서 국경을 넘나들었던 이. 멜라니와 하위헌스 사례에서 보았던 17세기 음악가의 여러 모습이 스테파니에게서 모두 공존한다. 열아홉 살 청년이 남긴 아름다운 시편은, 훗날 그가 보여줄 천의 얼굴을 예고하고 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