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불교의 만다라일까. 처음 마주했을 때의 생소함과 경이감이 생생하다. 수많은 얼굴과 날개, 눈들이 층층이 원을 이룬다.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동심원들이 제각기 돌아가는 착시현상도 일어나는 듯하다.
이는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 1098~1179)가 「스키비아스(Scivias)」 제1부 제6환시에서 묘사한 ‘천사들의 합창단’ 도판이다. 참고로 스키비아스는 ‘주님의 길을 알라(Sci vias Domini)’는 뜻이다. 힐데가르트는 ‘천사들에게서 온갖 종류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그들이 경이로운 화음으로 하느님께서 거룩한 영혼들 안에서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는 환시를 보았다.
천사들의 배경을 알기 위해 중세 천사론의 주요 원천인 위(僞) 디오니시우스의 「천상 위계론(De Coelesti Hierarchia)」을 살펴보자. 여기서 디오니시우스는 천사들을 세 품계씩 세 위계로 나누었다. 치품천사·지품천사·좌품천사, 권품천사·능품천사·역품천사, 주품천사·대천사·천사. 말하자면 3·3·3의 질서다.
힐데가르트의 기록은 조금 다르다. 아홉 대열은 3·3·3이 아니라 2·5·2로 묶인다. 그녀는 「스키비아스」에서 이렇게 쓴다. 처음 두 대열은 인간의 몸과 영혼을, 가운데 다섯 대열은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로 정화된 인간의 오감, 가장 안쪽 두 대열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리킨다. 성녀는 기존 구품천사론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인간의 몸과 영혼, 구원의 질서 안에서 새롭게 풀어낸 것이다.
이 원형의 천상은 힐데가르트 음악과도 공명한다. 그녀의 성가 〈오 지혜의 힘이여(O Virtus Sapientiae)〉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 지혜의 힘이여(O Virtus Sapientiae), 당신은 돌고 돌며(quae circuiens circuisti), 생명을 지닌 하나의 길 안에서 모든 것을 감싸안으셨습니다(comprehendendo omnia in una via quae habet vitam).”
Circuiens circuisti. 돌고 돌며, 에워싸며. 힐데가르트의 노래 속 지혜는 모든 것을 원처럼 포용한다. 「스키비아스」의 천사들도 그렇게 동심원을 이루며 창조주를 향한다.

단테의 「신곡」 천국편 제28곡도 함께 떠오른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하나의 눈부신 점을 중심으로 아홉 천사 무리가 원을 이루며 회전하는 광경을 본다. 베아트리체는 이를 설명하며 디오니시우스 이름까지 언급한다. 훗날 판화가 귀스타브 도레는 이 장면을 빛과 천사들의 장엄한 원무로 새겼다.
9월 17일, 힐데가르트 성녀의 축일을 기다리며 〈오 지혜의 힘이여〉를 듣는다. 12세기의 힐데가르트와 14세기 단테, 그리고 19세기 도레. 시대도 표현도 달랐지만 천상은 거듭 원을 그린다. “당신은 돌고 돌며 모든 것을 감싸안으셨습니다.” 900년 전 힐데가르트가 노래한 하느님 지혜의 신비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