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을 아는 사람은 바흐를 좋아하고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 브뤼헐을 좋아한다”고 어느 학자가 말했습니다.
북유럽 플랑드르(Flanders)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일상에 도덕적이고 풍자적인 은유를 담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1525?~1569). 16세기 플랑드르 미술의 거장인 그는 특유의 냉철한 시선으로 세밀하고 섬세한 표현에 웅장하고 깊이 있는 화면 구성과 밀도감 있는 인물 묘사로 당시 시대상을 매우 친근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냅니다. 그가 농민들을 주요 소재로 삼았기에 자칫 지식과 교양이 부족한 인물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는 당대 최고의 교양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화면에 중요한 인물이 한눈에 들어오게 하는 표현 대신,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주인공을 찾아내야 하는 남다른 표현은 그의 범상치 않은 표현 의도와 깊이를 증명해 줍니다. 그 역시 당대 많은 북유럽 예술가와 같이 르네상스 정신의 발상지인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대우주적 시각과 화려한 색채 그리고 생기 넘치는 표현을 익혔습니다.
<베들레헴의 인구 조사>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그의 대표작으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호구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령을 내려 모두 고향으로 향하는 내용과 동시에, 당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펠리페 2세 치하에 시달린 플랑드르 이야기가 공존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해 질 무렵, 눈 쌓인 플랑드르의 전원 풍경이 펼쳐집니다. 좌측에 인파가 무리 지어 있는 낡은 오두막집이 있고 그 옆에 거대하고 새까만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창가의 남자는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고, 창문 위에 매달린 둥근 리스는 이곳이 여인숙 또는 선술집임을 알려 줍니다.
여기서 놀라운 숨은 디테일이 있는데 이는 건물 벽 우측에 붙어 있는 ‘붉은색 배경의 쌍두독수리 문장’, 바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장으로, 당시 억압받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고발하는 것입니다. 성경 속 호구조사 장면에 부당한 세금 징수로 핍박받는 농민들의 애환을 조심스레 담은 기지와 재치가 돋보입니다.
그리고 인파에 묻혀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 놀라운 존재들이 있습니다. 전경 중앙에 푸른 망토 차림에 나귀를 탄 여인과 그 앞에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있습니다. 바로 호구조사를 위해 먼 길을 온 성모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브뤼헐은 고발합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기적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이들을 외면하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잔인함을….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