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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힐데가르트 성녀 〈오 가장 고귀한 푸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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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이 힐데가르트인 이들에게 항상 눈길이 갔다. 의외로 흔한 세례명은 아니다.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 1098~1179)는 중세부터 공경받았지만,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보편교회에 시성을 공식 확정한 것은 2012년이다. 같은 해 여성으로서는 네 번째로 교회학자가 되었다.

알고 있는 ‘힐데가르트’들은 작곡가와 약사, 화가다. 성녀는 신학, 자연철학, 시, 의학, 음악, 그림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경이로운 업적을 남겼다. 그 속에서 지인들은 각자 본받고 싶은 힐데가르트의 면모를 발견했으리라.

그녀의 다채로운 얼굴 가운데 이번에는 한 단어에 주목한다. 힐데가르트가 유난히 사랑했던 개념, ‘푸르른 생명력(viriditas, 비리디타스)’이다.

「스키비아스(Scivias)」 제2부 제2환시에는 독특한 형상이 등장한다. 사파이어 빛으로 빛나는 사람이 두 겹의 빛 가운데 서 있다. 바깥에는 눈 부신 빛이, 안에는 불꽃 같은 빛이 있고, 중심에 푸른 인간이 자리한다.

힐데가르트가 본 삼위일체의 환시다. 밝은 빛은 성부를, 불처럼 타오르는 빛은 성령을, 사람의 형상은 강생·육화되신 성자를 드러낸다. 형언할 수 없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빛과 불, 색채로 형상화했다.

왜 한가운데 성자는 사파이어 빛깔일까. 힐데가르트의 저작과 음악에는 ‘푸름’의 이미지가 자주 나타난다. 라틴어 ‘viriditas’는 ‘푸르다, 싱싱하다’를 뜻하는 ‘viridis​’에서 온 말이다. 이는 봄날 가지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힘, 메마른 땅에 다시 생명을 틔우는 기운, 인간의 몸과 영혼을 살아 있게 하는 생명성을 의미했다. 그 근원은 하느님에게 있었다.

힐데가르트의 성가 〈오 가장 고귀한 푸르름이여〉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 가장 고귀한 푸르름이여(O nobilissima viriditas), 당신은 태양에 뿌리를 내리고(quae radicas in sole), 눈부시게 맑은 광명 속에서(et que in candida serenitate), 세상의 어떤 뛰어남도 헤아릴 수 없는 원 안에서 빛나십니다(luces in rota quam nulla terrena excellentia comprehendit).”

여기에는 낯익은 이미지가 등장한다. ‘Rota’, 원 또는 바퀴다. 앞서 〈오 지혜의 힘이여〉에서 신적 지혜를 “돌고 돌며 모든 것을 감싸안는” 존재로 노래했던 힐데가르트는 이번에도 생명력을 원에서 빛나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우주관 역시 생동하는 질서로 가득했다. 「스키비아스」 제1부 제3환시에서 세계는 불과 물, 바람과 별들이 여러 층으로 맞물린 거대한 달걀처럼 나타난다. 힐데가르트에게 우주는 생기 넘치는 알과 같은 유기적인 성격을 지녔다.

비리디타스 역시 식물과 자연, 인간의 몸과 영혼,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모습을 바꿔 나타난다. 힐데가르트는 〈오 가장 푸르른 가지여(O viridissima virga)〉에서 성모를 “가장 푸른 가지”라고 노래했다. 마른 나무에서 싹이 돋듯,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한 죽음의 자리에, 다시 생명이자 구원이신 그리스도를 낳으신 분. 그녀는 성모님을 그렇게 보았다.

〈오 가장 고귀한 푸르름이여〉를 들어 본다. 힐데가르트의 ‘푸름’은 그저 색깔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식물을 자라게 하고 인간을 살아있게 하며, 만물을 소생시키는 본연의 힘. 하느님에게 뿌리를 두고 창조 세계 전체를 흐르는 충만한 생명의 이름이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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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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