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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힐데가르트 성녀 〈오 동정녀 교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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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아래 한 여인이 서 있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손에는 잔을 들었다.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잔에 담긴다. 여성은 누구일까. 바로 의인화된 교회(Ecclesia)다.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 1098~1179)가 본 교회의 모습이다.

여기서 교회는 살아 있는 인격체처럼 등장한다. 그녀는 어머니이자 동정녀이며,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신부다. 「스키비아스」 제2부 제6환시에서 교회는 십자가 아래에서 신랑인 그리스도의 피를 받는다. 힐데가르트는 이를 통해 십자가 희생과 성찬례를 하나로 잇는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가 교회에 주어지고, 교회는 다시 그 몸과 피를 성찬례 안에서 받아 모시며 살아간다.

이를 떠올리게 하는 힐데가르트의 성가가 있다. 안티폰 〈오 동정녀 교회여(O virgo Ecclesia)〉다. 노래는 교회를 한 여인에게 말하듯 부른다. 후반부 가사는 이렇다.

“오, 구세주의 피는 얼마나 귀한가(O quam preciosus est sanguis Salvatoris), 그 피는 왕의 깃발 아래에서(qui in vexillo regis), 교회를 그분께 신부로 맺어 주었다(Ecclesiam ipsi desponsavit).”

여기서 ‘왕의 깃발’은 십자가를 가리킨다. 십자가는 처형 도구였지만 옛 신학적 맥락, 그리고 힐데가르트에게는 신랑과 신부가 결합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즉 그리스도의 피가 교회를 그분의 신부로 맺어 준다는 것.

교회를 여성으로 그리는 것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성경에서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혼인 비유로 설명된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 5,25 참조) 요한묵시록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신부가 등장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역시 이를 명확히 한다. “하늘의 예루살렘인 교회는 순결한 어린양의 순결한 신부로 묘사된다.”(「교회 헌장」 6장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성모 마리아와 사랑받는 제자를 서로에게 맡기셨고, 그분 옆구리에서는 물과 피가 흘러나왔다.(요한 19,26-27,34 참조) 교부 전통은 이 물과 피를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의 표상으로 보았고, 새 아담 그리스도의 열린 옆구리에서 교회가 태어난다고 해석했다. 힐데가르트는 이러한 언어를 눈에 보이는 형상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힐데가르트의 교회는 피와 몸, 탄생과 혼인, 사랑과 결합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이런 맥락에서 성찬례 역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와 교회가 다시 만나는 자리다.

천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성녀의 음악은 여전한 질문을 던진다. 교회란 무엇인가. 왜 이는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는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머리이신 그분의 살과 피로 자라나는 지체다. 힐데가르트가 보았고 노래했던 아름다운 여성. 그녀에게서는 그리스도에게서 태어나 그분 생명으로 살아가는 온 교회의 신비가 응축되어 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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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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