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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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산책] 피터르 브뤼헐 <맹인들의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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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에는 농촌의 정겨운 소소한 일상을 담은 친근한 그림으로 보이지만 정곡을 찌르는 ‘진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적 메시지를 담은 16세기 플랑드르 미술의 거장 피터르 브뤼헐의 <맹인들의 우화>입니다.

뒤로 하늘로 높이 솟은 교회가 보이는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있습니다. 앞쪽으로 맹인들이 서로의 지팡이에 의지하며 앞으로 향합니다. 누더기 차림에 각양각색의 눈 질환을 앓는 이들은 대체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과연 목적지에 무사히 이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벌써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얼핏 보기에 다섯 명으로 보이지만 선두에는 역시 맹인인 리더가 한 명 더 있어서 총 여섯 명인데, 그는 앞의 구덩이에 빠져 뒤로 나동그라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연하늘색 복장의 남성은 연달아 넘어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휑하니 안구를 드러내 움푹 팬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39-41)

두 번째, 세 번째 줄줄이 넘어질 이들을 생각하니 그저 안타깝고 안쓰럽습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 하지만 일이 조금 잘 풀리는 듯하면 자아도취에 빠지는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브뤼헐은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이끌어 자신은 물론 그를 따르는 이들을 구덩이에 빠지게 하곤 합니다. 선두에서 인파를 이끄는 일이 얼마나 막중하고 엄중한 일인지, 리더는 단지 공동체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선두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임하는 자임을 망각하고, 겁 없이 또는 교만함으로 총대를 메곤 합니다. 그런데 이는 리더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가 어리석은 자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분별력 없는 공동체의 공동 책임입니다.

사제이자 철학자였던 에라스뮈스(Erasmus, 1466/1469~1536)는 인간 세상을 바라보며 외쳤습니다. “세상에, 이런 쇼는 없다. 이 무슨 연극이란 말인가. 어리석은 이들의 행동은 얼마나 기이한가!”

그렇습니다. 브뤼헐은 어리석은 인간 세상을 ‘블랙 유머’에 녹여내 보여 줍니다.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엄중하게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화면에 특유의 유머를 담아 관객을 무장 해제시키면, 그 깊고 진실된 메시지에 스며들게 됩니다. 멀리 보이는 교회 종탑은 무질서한 세상이지만 이 세상에 구원의 희망은 있다고….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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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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