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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엘리자베트 자케 드 라 게르 〈유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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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딧이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움켜쥐고 칼을 댄다. 옆의 시녀도 온몸으로 저항을 막는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 속 두 인물은 강렬하다. 젠틸레스키가 성경 속 여인들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다면, 또 다른 여성은 음악으로 풀어냈다. 프랑스 음악가 엘리자베트 자케 드 라 게르(Élisabeth Jacquet de La Guerre, 1665~1729)가 작곡한 〈유딧〉이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건반 연주로 루이 14세의 주목을 받은 그녀는 1694년 오페라의 일종인 서정 비극 〈세팔과 프로크리스〉를 선보였다. 프랑스에서 여성 작곡가의 대규모 극음악이 무대에 오른 첫 사례였다. 그러나 이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이후 그녀는 이런 작품을 다시 내놓지 못했다. 왕의 후원을 받았어도 당시 여성이 건반음악이나 소품이 아닌 극음악으로 입지를 다지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그녀가 1708년 내놓은 성서 칸타타집에는 구약 속 여성들의 이야기가 여럿 담겼다. 정확히는 〈에스테르〉, 〈수산나와 원로들〉, 〈유딧〉으로 총 여섯 곡 중 세 곡이 여자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성 중심의 음악계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작곡가는 성경 속 영웅, 의로운 여인들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을까. 역경에도 물러서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 자신을 이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딧〉의 첫 레치타티보는 “기근이나 전쟁으로, 베툴리아는 숨을 거두려 하고 있었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이어 “그 성읍을 포위한 잔혹한 자는 자신과 유딧이 함께할 호화로운 잔치를 준비하게 했다”는 가사가 나온다. 유딧기 7장의 죽어가는 성읍과 12장 연회 장면을 곧바로 붙인 것이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과음해 쓰러진다. 유딧은 칼로 그의 목을 베어 공동체를 구한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 앞서 프랑스어로 ‘잠’을 뜻하는 기악 악장 〈Sommeil〉이 흐른다. 옛 프랑스 음악에서 수면 부분은 주인공이 무방비해지고, 그 곁에서 다른 인물의 마음이 드러나는 심리적 장면인 경우가 많다.

라 게르의 잠 음악도 마냥 평온하지는 않다. 자장가처럼 조용하지만 선율은 계속해서 굽이치고 화성은 좀처럼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홀로페르네스는 잠들었지만, 그의 최후를 아는 청자는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우리는 한 여성이 칼을 들기까지의 시간, 잠든 홀로페르네스 옆에서, 유딧의 굳건한 결단의 시간을 함께 목도하는 느낌을 받는다.

판관기의 적장 시스라도 떠오른다. 야엘의 천막에서 우유를 마시고 깊이 잠든 그 역시 한 여성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판관 4,17-22 참조)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야엘과 시스라. 잠든 지휘관의 평온과 그 곁에서 깨어 있는 여인들의 결심이 묘한 긴장을 이룬다.

독창과 간소한 악기 구성으로 연주하는 성서 칸타타는 성경 이야기를 실내의 청중 가까이 옮겼다. 자케 드 라 게르는 이 장르를 통해 무대에서 다 펼칠 수 없었던 자신의 극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가장 연약한 손으로도 그분 기적을 이루기에 충분하다(Et la plus faible main suffit pour ses miracles).” 〈유딧〉의 마지막 가사에는 여성과 과부, 여종처럼 당대 취약하던 이들도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어쩌면 이는 당시 여성이 지닌 한계 속에서도, 음악으로 오롯이 자신의 길을 일구어갔던 작곡가의 신념이자 고백이었을지도 모른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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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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