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그런데 여기 <그리스도의 탄생>은 어둠이 아니라 환한 대낮 같은 것은 거룩한 성탄 장면을 보여 줍니다.
캄캄한 동굴 입구에는 소박한 마구간이 있고 지붕의 구름 위에는 두 손 모아 아기 예수에게 경배드리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여물통 앞에는 소와 나귀, 바로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이사 1,3) 하고 언급한 존재들이 있고, 양편으로 쳐진 천상의 푸른빛을 머금은 울타리는 전경과 후경을 구분하며 이곳이 성스러운 공간임을 보여 줍니다.
암흑에 묻힌 동굴은 바로 ‘인간 세상’입니다. 그 앞의 예수는 ‘어둠을 뚫고 빛 그 자체’로 오신 구세주임을 나타내는데, 이는 다름 아닌 동방 이콘의 영향입니다. 전경 양편에는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예수에게 경배를 올리는 마리아와 요셉이 있고, 이들 뒤에 한 사람씩 더 등장합니다.
마리아 뒤 머리에 왕관을 쓴 여인은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이고 우측에 푸른 망토를 두른 이는 13세기 도미니코회 최초 순교자로 도끼에 머리를 찍혀 순교한 베로나의 성 베드로입니다.
이같이 중앙의 성가족을 중심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두 명의 성인 성녀와 한 공간에 함께해 ‘성스러운 대화(sacra conversazione)’를 나누는 신비로운 순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의 주인공인 아기 예수가 차가운 흙바닥에 덩그러니 누워 있고, 약간의 지푸라기만이 연약한 아기를 보호해 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표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14세기 스웨덴의 성녀 비르지타가 본 환영으로,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신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 고요한 평화와 은총이 충만한 이 그림은 ‘천사와 같은 형제(Fra Angelico)’의 애칭으로 불리는 도미니코회 수사화가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의 기도와 정성 어린 봉헌인 그의 그림에서는 특유의 고요한 성스러움이 배어 있습니다.
도미니코회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의 41개 수사방에는 그가 그린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가득한데, 모두 예수 생애의 다양한 장면을 주제로 그려진 것입니다. 맑고 순수한 색채, 간결한 선과 구도 그리고 단순한 형태로 담아낸 고결한 그림은 그 어떤 드라마틱한 과함이 없는 절제된 모습이어서 마음에 깊고 은은하게 스며듭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정신과 육체, 천상과 지상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에 어린 왕이 오셨습니다!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