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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마누엘 카르도주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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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년 11월 1일 리스본. 성당마다 모든 성인 대축일 미사가 한창이던 오전 9시40분경 엄청난 지진이 발생했고 건물들이 무너졌다. 이어서 거대한 해일이 밀려왔으며, 불길은 며칠 동안 도심을 집어삼켰다. 목숨을 잃은 이는 수만 명에 이른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 중 하나로 기록된 리스본 대지진이다.

18세기 유럽 지성인들은 일제히 동요했다. 당대 리스본은 성당과 수도원이 즐비한, 독실한 종교도시로 통했다. 그런데 하필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날, 미사에 참례하던 경건한 신자들이 대재앙으로 희생된 것이다.

철학자 볼테르는 이듬해 발표한 「리스본 참사에 부치는 시」에서 이렇게 물었다. “리스본이 런던이나 파리보다 더 많은 악덕을 지녔단 말인가? 리스본은 심연에 삼켜졌는데, 파리에서는 춤을 춘다.” 환락과 타락에 젖은 곳이 아닌, 경건한 도시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했는가. 고통스러운 질문 앞에서 누구도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리스본에는 고딕 양식으로 유명했던 카르무 수도원 성당이 있었다. 지진 발생 한 세기 전, 이곳에는 평생을 성음악에 바친 수사가 살았다. 이름은 마누엘 카르도주(Manuel Cardoso, 1566~1650). 그는 1588년 가르멜회에 입회해 165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르간연주와 작곡을 담당했다.

대지진은 카르무 수도원에 보존됐던 5000여 권의 서적과 악보를 파괴했고, 카르도주 작품도 대부분 사라졌다. 오늘날 전해 오는 그의 음악은 생전에 출판된 악보집들이다. 그중 1625년 간행된 미사곡집에는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일명 〈레퀴엠〉이 실려 있다.

카르도주의 〈레퀴엠〉은 포르투갈 다성음악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반주 없이 여섯 성부 목소리만으로 이뤄진 곡으로, 르네상스 성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예기치 않은 불협화음과 반음계적 진행으로 미묘한 긴장을 자아낸다. 포르투갈인들이 ‘사우다드(Saudade)’라고 부르는, 아련한 그리움과 애틋함 같은 정서도 느껴진다.

지진 당시 성당에는 미사드리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중 상당수가 사망했다. 카르도주의 〈레퀴엠〉이 재난 이후 여기서 불렸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100여 년 전 같은 공간에서 노래했을 법한 레퀴엠을, 그 성전에서 숨을 거둔 이들을 위해 들어보는 일은 의미 있으리라.

모든 성인 대축일 다음 날인 11월 2일, 교회는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며 위령미사를 봉헌한다.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망자들이 하느님 자비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청하는 것이다. 1755년 리스본 대참사는 두 날의 의미를 기묘하게 잇는다. 모든 성인을 기념하던 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이튿날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리스본 카르무 성당에는 지붕이 없다. 무너진 천장 대신 드높은 아치가 푸른 하늘로 열려 있다. 카르도주의 레퀴엠 입당송을 들으며 그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 나아가 천상으로 향한 모든 영혼의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오늘도 그곳 지붕 없는 아치 사이로 구름이 흘러갈 터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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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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