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난방비 폭탄’이라는 말이 쏟아질 정도로 갑자기 오른 가스요금에 놀란 이들이 많았던지라, 저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고지서를 열어보았습니다. 보일러를 덜 켜고 아낀 덕분에 다행히도 전년동월보다 조금 더 나와서 이만하면 선방했다고 안도했지만, 예전 고지서를 찾아 비교해보니 비슷한 양을 썼던 2021년 1월보다 가스비가 36나 오른 셈이라 갑작스러운 인상 폭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이번 겨울 난방비가 급등한 근본 원인으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발생한 전쟁을 가장 많이 언급합니다.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 세계 2위 국가인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킨 후 유럽으로 보내던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며 에너지 자원을 무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카타르와 미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주로 수입하기에 수급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비중이 높던 유럽연합이 다른 지역으로 에너지 확보에 나서면서 공급망이 불안정해지고 가격도 상승했습니다. 그나마 유럽에서 따뜻한 날씨가 이어져 이번 겨울은 어떻게 버텼지만, 올해 3월 이후엔 에너지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경고합니다.
에너지 문제도 심각하지만, 세계적 곡창지대인 이 지역의 전쟁으로 전 세계 식량난도 심해졌습니다. 가스비와 전기요금, 식료품비와 음식값 등 생활 물가가 계속 오르면서 우리의 삶도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멀리서 벌어지는 비극, 남의 나라 일로만 생각하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우리 삶에도 이렇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며, 그야말로 지구촌 세계가 얼마나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생사가 오가는 전쟁 한복판에 있는 이들이 처한 고통에 비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지난 1월 10일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발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가 사망자 7110명을 포함해 1만8657명에 이릅니다.
지난 1년 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인 사상자는 적어도 각각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니, 이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스러지는지 그저 먹먹할 따름입니다. 더 끔찍한 것은 이 전쟁이 금세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뿐더러, 주위 여러 나라가 국방비를 늘리며 전쟁 준비에 더 힘을 기울이기 시작해 세계대전의 형태로 확전할 조짐마저 보인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올해 국방비를 지난해보다 4.4 늘렸는데, 자칫 전쟁의 광풍에 휩쓸리진 않을까 걱정이 커집니다.
올해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었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백신은 찾았지만 전쟁 바이러스는 여전히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이 전쟁이 관계된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패배를 나타낸다고 지적했습니다. 교황은 2020년 발표한 회칙 「모든 형제들」 261항에서도 “전쟁은 인류의 실패, 치욕스러운 항복, 악의 세력에 대한 패배”라며, 그러한 전쟁 속에서 피해자들이 겪는 “폭력의 진실을 숙고해 보고, 그들의 눈으로 그 실상을 바라보고,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전쟁 한가운데에 자리한 악의 심연을 알아본다면 평화를 선택하는 것이 순진한 이상이 아님을 깨닫게 될 거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이 복잡한 국제정치 질서에선 순진한 이상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비참함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조금 더 귀 기울인다면, 평화를 이뤄가는 길을, 형제애를 나누는 길을 더 우선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