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우일 주교와 함께 걷는 세상(강우일 주교 지음/ 바오로딸/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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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의장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는 굵직한 사회 현안들이 첨예한 대립으로 갈등을 빚을 때마다 침묵하지 않았다. "교회는 세상에 정의가 실현되는지 끊임없이 살피고 호소하고 경고하는 예언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사회를 향해 가톨릭교회 가르침을 전하는 데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로 인해 "교회가 오히려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강 주교는 "교회 역사상 많은 갈등과 분열이 있었고, 이런 분열을 우려해서 모든 교우들이 동의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고 했다. 신자들 모두가 납득하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왔고 삶의 기준으로 삼아 온 하느님 가치를 확고하게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이 주교의 사명이라고 했다.
최근 발간된 「강우일 주교와 함께 걷는 세상」은 강 주교의 강론과 강연, 기고문 등을 모은 것이다. 생명ㆍ여성ㆍ환경ㆍ평화 등에 관해 가톨릭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이 담겨 있다. 책 주요 내용을 문답형식으로 정리했다.

▲ 강우일 주교는 가톨릭 사회교리 가르침에 따라 교회가 세상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강 주교가 2010년 성탄절에 강정마을에서 제주 생명·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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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는 왜 사회문제에 관여하는가. 교회는 종교영역에 머물러야 하는 것 아닌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인간의 품위와 존엄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모든 일에 교회는 무관심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세상에 인간과 무관한 일이 어디 있는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같은 모든 영역이 다 인간과 직결되는 일이다. 정치든 경제든 과학이든 기술이든 하느님을 닮은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데 대해 교회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잘못된 길을 갈 때 교회가 그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고발하는 용기를 갖지 못하면 교회의 예언적 직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발에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고 하신 예수님 말씀대로 짠맛을 잃은 소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관해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제주교구장으로서 이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국가가 한다고 다 옳고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현대사를 살펴봐도 가장 많은 희생과 고통을 몰고 온 불의와 죄악은 국가가 공권력으로 저지른 경우가 태반이다. 제주는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것이나 다름없는 4ㆍ3 사건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지니고 있다. 4ㆍ3 사건 때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이 흘린 피만큼 그 후손인 우리는 그만큼 더 철저히 폭력을 거부하고, 무력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평화를 열매 맺어야 한다. 무력으로 평화를 이룩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환상이다. 인류 역사상 평화가 무력으로 이뤄진 적이 없다. 상대보다 더 강력한 무력을 확보했다고 해서 승리와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이에 관해 공부하시고 올해 초 주교회의 누리방에 FTA를 고찰한 글을 올리셨다. 이제는 평범한 국민도 경제에 대해 공부하고 정치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나라가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FTA는 시장자유화의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다. 국제통상 전문가들은 FTA를 맺음으로써 서로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FTA를 맺은 대부분의 나라가 외형상 경제규모는 커졌을지 몰라도 극소수의 대기업과 자본가들만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중산층이 몰락해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무한경쟁의 구도 안에서 안정된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국민 과반수가 임시직과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최저생계비를 버는 것도 힘든 가혹한 빈곤을 강요당하고 있다.
▶세상과 동떨어졌던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새롭게 복음을 이야기하며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고, 세상 언어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해왔다. 지난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막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교회에선 이 공의회 정신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 한국 천주교회는 다른 종교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고, 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종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세상을 향한 울타리를 허물지 못하고 울타리 안에서의 친교에 자족하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심각하게 교회 정체성을 자문해보며, 주님이 바라시는 해방과 탕감을 실천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속의 가치관에서 해방되고, 주님께 진 빚을 탕감받기 위해 주님의 가장 작은 형제들, 세상 불의에 억눌려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연대와 일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 새로 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계실 것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