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김수환 추기경
가톨릭대학교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엮음/1만 5000원
"추기경님은 저녁노을을 좋아하셨어요. 혜화동 신학교에 사실 때도 저녁노을이 질 즈음이면 노을이 잘 보이는 곳에 가셔서 한참 동안 바라보곤 하셨어요."(고 전숭규 신부)
"어느 날 철거반이 또 들이닥쳤기에 전화를 했더니, 추기경님은 `나 지금 견진성사 주고, 점심 먹는 중이야. 내가 금방 달려갈게!`하시고는 식사하다 말고 달려오셨어요."(성심수녀회 손인숙 수녀)
김수환 추기경(1922~2009)에 얽힌 이야기는 아무리 퍼내도 줄지 않는 화수분 같다. 추기경 생애를 제법 안다고 하는 사람도 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며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그리운 김수환 추기경」은 그와 가까이 지냈던 비서(전숭규 신부), 일본 상지대 동창(김형석 교수), 빈민운동가(고 제정구 의원 부인 신명자씨), 동료 주교(두봉 주교) 등 10명이 털어놓은 회고담을 엮은 책이다.
전숭규 신부는 논산훈련소 미사에서 훈련병들과 함께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를 부른 것을 추기경의 최고 강론으로 꼽았다.
"(훈련소 방문을 앞두고) `이등병의 편지` 노래 테이프를 드렸어요. `이 노래만 알면 강론의 반은 하시는 겁니다`하면서. 추기경님이 훈련소 미사 강론을 하실 때 다 함께 군악대 반주에 맞춰 그 노래를 불러보자고 제안하셨어요. 그날 훈련병 4000여 명이 다 자기 얘기처럼 느껴지는 노래를 불렀는데, 반 정도는 눈물을 흘렸어요. 추기경님도 끝까지 다 부르셨죠. 몸서리가 쳐질 만큼 감동적인 미사였어요."(18~19쪽)
전 신부는 "추기경은 젊은 사람을 만나면 젊은 사람이 되고, 가난한 이를 만나면 가난한 사람이 되고, 창녀를 만나면 창녀 마음을 이해해 준다"며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소통 능력이 뛰어났다"고 회고했다.
또 추기경은 어디 가서 밥투정해본 적 없지만, 예수의 작은자매우애회만 가면 "이게 반찬이 뭐야? 고기 좀 내놓지!"하며 반찬 투정을 했다. 작은자매우애회는 한겨울에도 맨발로 지낼 정도로 가난을 실천하는 수도회다. 전 신부가 궁금해서 나중에 물어보니까 "내가 반찬 투정을 해야 1년에 한두 끼라도 그 수녀님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 예수의 작은자매 우애회 자매들과 함께한 김수환 추기경.
한겨울에도 맨발로 지낼 정도로 가난을 실천하는 자매들을 위해 일부러 반찬 투정을 할 정도로 속깊은 사랑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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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구 의원, 정일우(예수회) 신부, 판자촌 빈민들과 동고동락한 신명자(베로니카)씨는 추기경 선종 며칠 전 추기경과 정일우 신부가 병실에서 만난 아름다운 장면을 추억했다. 추기경은 제 의원과 정 신부의 빈민운동을 오랫동안 남모르게 뒤에서 도왔다.
"추기경님은 돌아가실 시간이 가까워졌고, 정 신부님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계셨는데, 두 분이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막 웃으시는 거예요. 추기경님은 잘 들리지 않는 음성으로 `정 신부하고 제 선생이 내 스승이었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고는 정 신부님은 추기경님을 위해, 추기경님은 정 신부님을 위해 매우 아름다운 기도를 하셨어요."(119쪽)
이해인 수녀는 유머 감각과 포용력 넘치는 인간 김수환의 매력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추기경을 만난 이 수녀 여동생이 "추기경님이 너무너무 좋아요"라고 존경을 표시하자, 추기경은 "그렇다고 나한테 시집을 올 건 아니잖아?"하며 농담으로 응수했다. 이 수녀는 추기경에게 본받고 싶은 덕목으로 `유난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모든 이를 포용하는 따뜻함`을 꼽았다.
1970, 80년대 격동의 세월을 지혜롭게 헤쳐나온 추기경 삶을 반추한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분의 추기경다움은 교회를 대표하면서도 한 나라를 걱정하고 한 민족의 미래까지도 전망하면서 행동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