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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삶의 지침이 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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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의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성소 주일을 맞아 성직자나 수도자는 물론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묵상하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소박한 지침이 되는 책을 소개한다.

 

 


세상이라는 제대 앞에서- 전숭규 신부 묵상집 / 에체


“역시 천주교 신자답군요”하는 말을 들으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도 별수 없군요”하는 말을 들으면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그리스도 신자인 우리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그립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참삶을 살지 못할 때, 세상 사람들은 이를 빌미 삼아 예수님을 또다시 죽음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랑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역시 천주교 신자답군요’ 중에서)

「세상이라는 제대 앞에서」는 의정부교구 전숭규 신부가 2012년 한 해 동안 「매일미사」에 ‘오늘의 묵상’으로 연재한 글을 묶은 묵상집이다. 그는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동창 사제들이 전 신부의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책을 만든 것이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전 신부는 재학시절 신학 공부에 눈을 떠 평신도 신학자를 꿈꿨다. 그러나 교구 사제 사목자로 사는 것이 하느님이 주신 성소임을 확신하고, 동기보다 열 살가량 많은 늦깎이 신학생이 됐다. 1997년 서울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은 그는 2004년 의정부교구가 설정됐을 때 “교구에서 가장 작고 가난한 본당으로 보내주십시오”라고 교구장에게 청했고, 경기도 북단의 연천본당에서 8년간 주임 신부로 지내며 교우들과 동고동락했다. 그곳에서 어르신들과 국화꽃을 키우고 전시를 열어 주민들을 성당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웃 사랑’을 큰 것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나는 돈이 없어’라거나 ‘내가 무슨 힘이 있어야지’하면서 이웃을 위한 봉사나 헌신을 어려워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소유와 능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이웃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고 가엾은 마음을 지닌다면, 어떠한 처지와 여건에서도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사랑을 베풀 대상과 기회는 참으로 많습니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 큰일에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작은 일에 달려 있다’ 중에서)

책의 제목은 전 신부가 좋아하고 탐독했던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의 저서 「세상 위에서 드리는 미사」를 모티브로 했다. 1년간 매일의 미사 전례를 위해 집필된 ‘오늘의 묵상’ 중에서 독자들의 신앙에 도움이 되고 삶에 영감을 주는 감동적인 대목들이 묶였다. 길지 않은 글귀, 중간중간 자리한 성화와 전 신부의 유품 이미지들은 손길은 쉽게, 눈길은 오래 책장에 머물게 한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추천사에서 “전 신부님은 50세를 겨우 넘긴 짧은 생애를 살다가 하느님 나라로 갔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또 한 사람의 사제로 살다간 삶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향기로워서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며 “신부님의 마음을 닮는 우리들이 되어야겠다”고 전했다.

 

 

 


새 명상의 씨 / 토마스 머튼 수사 지음 / 오지영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하느님의 뜻에 따라 매 순간 나의 자유에 심어지는 씨앗은 내 정체성 자체의 씨앗이며 나의 실체, 나의 행복, 나 자신의 거룩함의 씨앗입니다. 이들을 거절하는 것은 모든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존재, 즉 나의 정체성, 나의 자아 자체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으며 실행하지도 않는 것은 충만한 나의 존재를 거절하는 것입니다.”(56쪽)

「새 명상의 씨」는 20세기 최고의 명상가로 불리는 토마스 머튼이 자신의 수도 생활을 통해 떠오른 단편적인 생각과 개인적인 묵상을 정리한 기록이다. 책을 구성하는 39개의 작은 씨앗은 명상의 의미와 본질뿐 아니라 침묵과 고독의 중요성, 영적 여정에서 자아의 역할과 기능, 명상 체험에 따르는 어려움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보편적이고 시대를 초월하는 내용이라 지금의 그리스도인들과도 쉽게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체험한 명상의 삶을 통해 우리가 현실에서 믿음과 신앙을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고, 영적인 삶에 대한 이해를 넓혀 세상을 바라보도록 소박하고 담담한 언어로 안내한다.

“눈을 깨끗하게, 귀를 조용하게 그리고 마음을 평온하게 지키십시오. 하느님의 공기를 호흡하십시오. 가능하면 하느님의 하늘 아래에서 일하십시오. 그러나 도시에서 살며 기계들 가운데에서 일하고, 지하철을 타야 하며, 범람하는 라디오 뉴스가 귀를 멀게 하고, 음식도 건강을 해치는 곳에서 먹어야 하며, 주변 사람들의 정서가 권태로 나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그런 곳에서 살아야 한다 하더라도 인내심을 잃지 말고 그것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당신 영혼에 심어진 은거의 씨앗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런 일들로 진저리가 나더라도 당신은 묵상의 치유하는 침묵에 대한 열망을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116쪽)

머튼은 명상 기도란 간단하고도 깊이 있는 영적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용히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기도하고 기다리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정에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과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말씀하시는 분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복잡하고 힘겨운 삶 속에서도 평화와 기쁨, 침묵 중에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있다는 분명한 결실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 출신인 토마스 머튼은 무명 화가였던 영국 태생의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8년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으며 작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였으나 대학 시절에는 제2차 세계대전 등 시대적 상황 속에서 무신론자가 되기도 했다. 이후 가톨릭으로 개종해 1940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한 뒤 1968년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칠 때까지 수사·영성 작가·사회정의 수호자로 살았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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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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