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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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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 융(C. G. Jung)은 개인 삶의 역동성을 설명하기 위해 인생의 시간을 인생 흐름에 비유했다.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는 ‘아침’이라 할 수 있고 피로, 졸음, 에너지 손실 또는 ‘소진(burn-out)’ 시기로 볼 수 있는 중년의 위기는 정오의 위기에 비견될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오후」 제목에 사용된 ‘오후’는 이런 융의 은유를 차용했다. 체코 출신 신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 영성가인 저자 토마시 할리크 신부는 그리스도교 역사의 시작부터 근대의 문턱까지, 곧 제도적·교의적 구조를 세워온 기나긴 시기를 ‘오전’으로 봤다. 그리고 지금 교회에 이 구조를 뒤흔드는 ‘정오의 위기’가 찾아왔다며,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오후’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고 역설한다. 이는 더 성숙한 형태의 그리스도교로 더 깊이 나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역동적인 특성을 되살리고 심화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그간 할리크 신부는 저서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과 「상처입은 신앙-내 상처를 보고 만져라」, 「신이 없는 세상」 등으로 자신이 체험하고 고뇌한 신앙 문제들을 폭넓고 깊게 성찰하며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그는 16장에 걸쳐 과거·현재 교회와 신학에 대한 진단하고 성찰하며 비판을 가한다. 그리스도교가 잘 성숙하여 다음 날의 새로운 모습을 준비해야 하는 ‘오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독선적이고 호전적인 종교문화가 아니라 이 시대의 상처받은 이들 아픔을 어루만지며 희망을 나눌 수 있는 영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위기의 시대, 보편적 그리스도를 찾아서’라는 부제 의미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처한 상황은 많은 측면에서 종교개혁 직전 상황을 연상시킨다. 성적·정신적 학대 사례가 의외로 많이 드러나면서 교회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교회 전체 시스템에 대해 의문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문 닫은 텅 빈 교회들을 예언적 경고 신호로 봤다는 그는 이제 ‘새로운 변화를 이뤄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교회들이 자기중심주의, 집단 나르시시즘, 성직주의, 고립주의, 편협한 지역주의의 유혹에 저항한다면, 더 폭넓고 깊은 새로운 교회 일치에 중요한 방식으로 이바지할 수 있다”는 의견은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종교 인구가 급감하는 한국 사회의 종교 문화에도 열쇠 말을 던진다.

책은 5월 1일부터 전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을 비롯한 전국에서 ‘위기의 시대, 신앙의 길을 찾다’ 주제로 강연하는 할리크 신부의 방한 일정에 맞춰 출판됐다.

할리크 신부는 체코 공산정권 시절 비밀리에 사제품을 받고 지하교회에서 활동했으며 민주화 이후 초대 대통령인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 자문단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유럽에서 무신론자 비율이 높은 체코 현실에서 오늘날 종교의 현실과 과제를 통찰하는 연구자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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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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