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아니 에르노의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그리고 케테 콜비츠의 판화와 비틀스·마일스 데이비스· 쳇 베이커의 음악에, 영화 ‘쁘띠 마망’과 ‘어느 가족’까지…. 허찬욱 신부(도미니코,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의 에세이에서는 인간과 슬픔과 고통에 관한 성찰이 문학·음악·미술·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 속에서 펼쳐진다.
책 제목은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에서 왔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힘들어하는 롤랑 바르트에게 한 친구가 ‘원래 슬픔은 그런 거’라고 말하자, 롤랑 바르트는 ‘모든 이에게는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고, 어떤 슬픔도 일반화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는 여기서 ‘원래 슬픔은 그런 거’라고 했던 친구 말을 바꾼 것이다.
22편의 글들은 영화나 음악, 책 속에서 발견하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과 삶의 장면들을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의미를 밝히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진정한 ‘공감’으로 이끈다. 「애도일기」,「대성당」, 케테 콜비츠 판화 등에서는 인간의 슬픔을 읽어내고 비틀스와 마일스 데이비스 음악에서는 신앙 언어의 문제를 꺼낸다. 또 쳇 베이커 음악에서는 삶의 태도를, 영화 ‘쁘띠 마망’과 소설 「환상의 빛」에서는 서로 어긋나는 사람의 마음을 얘기한다.
이 책은 종교 철학자로서 철학이라는 큰 이야기가 들려주지 못하는 작은 이야기를 문학과 음악, 영화에서 담고 싶은 저자의 바람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특별히 슬픔을 주제로 한 글이 많이 눈에 띈다. 허 신부는 책머리를 통해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 힘든 것을 넘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 타인을 이해하는 일의 시작점”이라고 밝힌다.
타인의 슬픔과 애도, 고통을 다룬 글들 속에서 저자는 ‘하느님은 고통의 끝자락에서 부를 수 있는 마지막 이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도가 원망이 되고, 원망이 저주가 되고, 심지어 살의마저 느껴져 울음이 비명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 그 순간을 견뎌 줄 유일한 존재는 오직 하느님뿐’이라고 들려준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