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코센티노 신부 엮음/성연숙 옮김/한동일 감수/168쪽/1만3000원/바오로딸
6·25전쟁 중에 태어나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중학교에 다녔던 한 소년은 종교 수업 시간을 통해 처음으로 천주교를 접하고 구약성경 이야기와 예수님 가르침에 관해 배웠다.
이후 김대건 신부님 이름을 딴 대건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전후 한국을 도운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의 그리스도교와 그 문화에 궁금증이 일었다. “그들이 지닌 그리스도교 정신이 어떤 것이길래, 전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우리나라를 돕고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끌어 준 것인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 국가들을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은 그를 교내 예비신자 교리반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열여섯 살 되는 해 성탄 전야에 하느님 자녀로 태어났다.
지적 호기심과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예수님의 삶과 고통,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알고자 했고 그로써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더욱 내밀히 만나고 싶어했던 한국교회 신앙 선조들의 열망과 혼을 이어받은 후손의 모습이기도 했다. 책에 담긴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 이야기다.
원본은 올해 초 이탈리아 성바오로 출판사에서 ‘우리 시대의 증인들’ 총서의 일환으로 출판된 「Lazzaro You Heung-sik: Come la folgore viene da Oriente」(라자로 유흥식: 동쪽에서 번개가 치듯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추천사를 쓴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5장으로 나뉜 책 1~2장에서는 천주교를 접하고 신앙의 싹을 틔운 뒤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했다. 3~5장은 사제 양성, 사제직, 주교직에 관한 소신을 들려주고 있다. 끝부분에는 ‘오늘날의 교회에 관한 열 가지 열린 질문’과 엮은이의 맺는 글을 실었다.
교황청 국무원 소속 프란체스코 코센티노 신부 질문에 유 추기경이 답하는 형식으로 엮인 책은 인터뷰 영상을 보듯 쉽게 읽힌다.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신앙 성장 과정과 신학교 생활, 사제로서의 삶, 주교 직무의 무게를 말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다. 자전적이면서도 영적이고 사목적인 성찰들은 신앙인들이 만나야 할 하느님 모습과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묵상하도록 한다.
유 추기경에게 있어서 수녀들과 김대건 성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마음을 열게 한 증인이다. 고등학교 시절 교리 공부를 도와줬던 옆 학교 수녀들은 “신학교에 가지 않겠니?”라고 말을 건네며 사제 성소의 불을 지폈다. 김대건 신부님이 보여준 신앙 증거의 삶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구체적인 것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깨우치게 했다. 여기서 유 추기경이 발견한 소중한 가르침은, ‘영성 생활은 매료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아는 지름길은 ‘일상’이다. “일상에서 말씀을 살아가고, 이웃과의 나눔을 통해 사랑을 체험하는 일”이다. 미사 참례가 어려웠던 군시절에 몇 명이 모여 말씀 전례로 주일을 지냈던 일, 이탈리아 프라스카티 사제학교에서의 생활 등 유 추기경의 신앙은 소박한 일상에서 겪은 일들에서 체험된 것들이다. 그래서 유 추기경은 이렇게 말한다. “말씀을 살아가기 시작하세요. 작은 것들 속에, 일상의 소소한 일들 속에서 말씀을 실천에 옮기세요. 그러면 말씀이 빛을 비추고, 가야 할 길을 알려줄 겁니다.” 사제들에게는 “우리 삶의 최종 목표는 사제가 되는 것 또는 이런저런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예수님을 배필로 선택하는 용기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이라고 조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천 글에서 “동양에 있는 교회의 목소리를 전하게 돼 기쁘다”며 “유흥식 추기경님의 글을 통해 성직자 중심주의를 넘어 시노드적이고 봉사하는 공동체 안에서 평신도 형제자매들 ‘곁에’,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거듭나는 사제 직분에 관해서도 잘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