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 웨타 신부 지음/민제영 옮김/200쪽/1만8000원/분도출판사
베네딕토 성인이 6세기 초에 쓴 「수도 규칙」은 수도승의 기본자세와 수덕 방법을 종합한 것이다. 이 규칙은 100년도 채 안 되어 유럽 거의 모든 수도원에서 채택할 정도로 수도원 생활의 규범이 됐고 신앙인들의 영성과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규칙서는 머리말과 함께 73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베네딕도 수도회 사제인 저자는 이 중 제7장 ‘겸손’에 주목한다. 겸손은 교만에 반대되는 덕으로 ‘모든 덕의 대장’, ‘덕들의 절정’, ‘덕들의 꽃’ 등으로 불리며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베네딕토 성인도 규칙서에서 겸손을 ‘사다리’에 비유해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자기부정 ▲순명 ▲인내 ▲참회 ▲평정 ▲자기겸허 ▲신중 ▲침묵 ▲품위 ▲분별 ▲경건의 12개 단계로 제시하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겸손해질 때 주께서는 천상으로 향한 그 사다리를 세워 주신다”고 했다.
‘성 베네딕도와 함께하는 자존감 수업’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웨타 신부는 성인이 말한 이 ‘겸손의 사다리’ 열두 개의 내용을 복잡다단한 세상 속에서 아주 효과적으로 자존감과 내면의 평화를 찾는 프로그램으로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참된 자기 존중은 거룩함의 형태를 띠고, 베네딕토 성인이 보기에 거룩함은 자기애가 아니라 자기 버림에 관한 일이다.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생각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 자체를 무너뜨린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느님의 은총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비우는 삶’이기 때문이다. ‘왜 겸손인가’에 대한 답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각 장 도입부에 관련 규칙을 먼저 보여 준 다음 자신의 일상과 수도원 생활 등을 예로 들며 열두 개 사다리의 각 단계를 설명한다. 학창 시절 저글링 아르바이트, 대학 럭비팀 훈련, 수상 구조요원 활동, 수도원 입회 전 스탠드업 코미디 도전 등 흥미로운 이력이 녹아든 듯 화법이 솔직하고 익살스럽다. 덕분에 규칙이 따분하지 않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수도승을 위한 덕목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 처지에 맞도록 쉽고 새롭게 경쾌한 수행서로 바뀐 모습이다. 직접 꾸민 삽화들도 정감 있다.
각 덕목을 생각과 말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기에 규칙 내용이 더 실제로 느껴진다. 설명 다음에는 ‘과제’를 주어서 일상에서 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이끈다. 과제는 구체적이다. “저녁 식사 때 빵의 딱딱한 부분, 바나나 또는 가장 작은 피자 조각 등 가장 입맛이 당기지 않는 것을 먹어보라”거나, “누군가를 지적하거나 고쳐 주려 하지 말고 하루를 지내보라”, “당신을 비웃는 사람과 함께 웃어라” 등이다. 베네딕토 성인의 가르침이 누구나 생활 안에서 시도해 볼 만한 애덕 실천으로 제시되는 듯하다. 웨타 신부가 제시한 마지막 과제는 “이 책을 거저 나누십시오”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