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내과 의사이자 현대 신비가 ‘하느님의 종’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Adrienne von Speyr, 1902~1967)는 20세기 위대한 신학자 중 한 명인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 추기경에게 많은 영적 영감을 준 인물이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발타사르 추기경에게 세례를 받고 개종한 그는 신학과 영성, 신비와 성흔에 관한 6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슈파이어의 영적 감수성과 신비적 체험은 발타사르 추기경이 계시신학을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발타사르 추기경은 슈파이어의 신학을 통해 세상에 파견된 교회에 대해 깊이 성찰했고, 이는 그와 함께 1945년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된 재속 수도회 ‘요한공동체’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발타사르 추기경은 슈파이어가 쓴 작품에 대해 “대부분이 성경을 깊이 묵상한 내용과 하느님 말씀을 늘 새로운 관점에서 듣고 풀어내려 한 내용”이라고 특징을 밝혔다. 이는 슈파이어가 멈추지 않고 늘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의미다. 이런 노력은 기도로 표현됐고, 슈파이어는 끊임없는 기도 속에서 하느님 부르심에 순종했다.
슈파이어의 대표작인 이 책은 생애 내내 그의 삶을 지탱해 준 뿌리, 기도를 광범위하게 다룬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슈파이어의 개인적인 영성이 기초에서부터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영성 작가이자 신비가, 또 의사로도 활동한 자신의 영성과 신학적 지식, 기도 체험, 성경을 토대로 다양한 각도에서 기도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저자는 삼위일체론과 연결하며 기도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기도가 이뤄지는지, 창조 세계는 어떤 기도를 바치는지, 그리스도나 마리아는 어떤 기도를 바치는지 등 기도의 원천을 살핀다. 또 상황에 따라, 직분에 따라, 어떻게 기도를 바쳐야 할지 등에 대해서도 나눈다. ‘삼위일체’를 부부 및 연인 관계, 남녀의 사랑과 연결해 얘기하는 등 딱딱하고 어렵게 여겨질 수 있는 신학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주는 것도 특징이다. 가정생활, 의사로서의 체험 등 삶에서 직접 경험한 구체적인 사례와 그에 맞는 비유도 중간중간 맛볼 수 있다.
머리말은 발타사르 추기경이 썼다. 여기서 추기경은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순전히 인간적인 동기와 간청을 넘어 삼위일체적 생명과 기도에 참여하는 것, 세상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으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이라며 “이것이 이 책의 주요 골자”라고 했다.
슈파이어는 발타사르 추기경 이외에도 로마노 과르디니, 앙리 드 뤼박, 휴고 라너 등 신학자들과 신학적으로 교류했다. 신학자들은 그녀가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신학적으로 완벽한 체계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선종 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그가 교회에 큰 공헌을 했다고 밝혔다. 2018년 시성이 진행돼 ‘하느님의 종’ 호칭이 부여됐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