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축일에 한수산(요한 크리소스토모) 작가는 백두산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모래언덕에서 고(故) 이경재(알렉산델)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당시 이경재 신부는 “황금의 입이라고 불릴 만큼 설교로 위대했던 성인을 본받아 하느님께서 주신 글 쓰는 재능, 그 탈렌트로 하느님을 드높이고 기리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당부를 남겼다.
영세 후 하느님을 더 알고자 하는 길에서 한 작가 마음 안에 걸어들어온 것은 한국교회사와 순교자들이었다. 교회사 책을 탐독하며 ‘순교자란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물음 속에서, 순교자들의 정신과 영혼이 그를 기도로 이끌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친 순교자의 삶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었고, 그로 하여금 ‘세례받던 첫날의 감격을 잊지 말자’고 늘 생각하게 했다. 전작 교회사 이야기 「꽃보다 아름다워라, 그 이름」, 「순교자의 길을 따라 1,2,3」 등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번 순례 에세이 「내가 떠난 새벽길」은 새벽길을 걸었던 세 인물의 이야기다. 1부는 작가가 말하는 ‘나의 새벽길’이고, 2부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새벽길’, 3부는 ‘최양업 신부의 새벽길’이다. 특유의 산문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명징한 문체로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와 최양업 신부가 걸었던 길들, 직접 찾아간 시완쯔와 마찌아즈 교우촌, 롤롬보이의 오늘날, 신학생 최양업과 함께했던 김대건ㆍ최방제에 대한 이야기를 100여 년 시간을 넘나들며 건넨다. 2부 브뤼기에르 주교의 자취를 찾는 이야기는 2008년 교계 언론에 연재된 여행기를 새롭게 구성했고, 3부는 최양업 신부가 신학생 시절을 보낸 중국 마카오와 필리핀 롤롬보이를 답사한 글을 모은 것이다.
“순교자들의 뒤를 따라가는 기쁨에 교회사와 신앙 선조들이 걷던 길을 찾아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나 최양업 신부의 발걸음을 쫓아 순례를 떠난 이유에 대해 그는 “그분들이 만나셨던 햇살, 그분들이 만나셨던 새소리 등을 세월의 강을 건너 만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독자들도 같은 심정으로 읽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인 한 작가는 “그분들의 발걸음이 가슴에 와 얹히는 기쁨을 함께 느끼기를 바란다”고 했다.
선조들이 숨쉬었던 공간 속으로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한 작가의 노력은 취재 여행에서부터 드러난다. 마카오 취재 여행 일정을 6월 7일로 잡은 것은 김대건·최양업·최방제 세 소년이 마카오에 도착한 날을 맞춘 것이다. 이는 한 작가 평생의 취재 방식이기도 하지만, 세 소년이 밟았던 마카오의 같은 계절을 밟음으로써 그들의 체험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 보고자 하는 의도다.
“순례길에서 마주하는 바람과 물결,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당시 신앙 선조들도 ‘이 소리를 들으셨겠지’ 상상할 때 제 마음에 영적인 기운이 커집니다. 참 행복한 체험입니다.”
한 작가는 후반기에 최양업 신부에 대한 작품을 새롭게 집필한다. 픽션 형식으로 쓰일 신작은 최양업 신부의 부모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복녀 이성례 마리아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박해의 상황 속에서 빚어지는 배교와 순교의 장면 등도 그려질 예정이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