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묵시록’이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종말, 죽음, 사탄 등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봉인된 두루마리를 여는 어린양(5,1-14),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13,1-18) 등 요한묵시록에 담긴 해독하기 어려운 이미지와 상징, 아무 연결점을 찾기 어려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독특한 전개 방식은 묵시록이 세상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는 하느님의 계획을 비밀스럽게 담고 있는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묵시록 저자마저 “지각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을 숫자로 풀이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그 숫자는 육백육십육입니다.”(13,18)라고 말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많은 상징과 신비로운 표현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권 요한묵시록. 국내에서는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우는 여러 유사종교로 인해 요한묵시록이 도드라진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우리의 미래를 예견하며 묵시록을 적었을 리는 없다.
요한묵시록은 오늘날 튀르키예 중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지금은 유적으로만 남아 있는 에페소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저술된 책이다. 2000년 전 그곳에 살던 요한이 자신의 공동체가 읽을 수 있도록 적은 것이다. 자연스레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과 언어 습관, 묵시록이라는 문학 장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묵시록에 담긴 모든 상징을 풀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 2」는 성지순례 안내서이자 요한묵시록 안내서다. 존 킬갈렌(예수회) 신부가 2012년 쓴 같은 제목(「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의 책을 번역했고, 여러 차례 성지를 방문했던 염철호(부산교구) 신부가 성경 본문을 바탕으로 묵시록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시대적 상황, 전승과 상징 등을 흥미롭게 풀어썼다. 성경의 빈 부분을 메우기 위해 외경과 구전 자료들도 함께 다룬다.
책에선 특히 파트모스섬과 묵시록의 일곱 교회(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 그리고 당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적 요소들을 자세히 다룬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관련 지도, 성화 등이 더해져 이해를 돕는다. 성지순례를 직접 가지 못하는 이들도 저자의 설명과 이야기를 따라가며 묵시록과 함께 걷는 순례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수의 이름을 합산하면 888이 나오므로 666이 예수와 반대되는 구체적인 한 인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중략) 수를 상징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많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숫자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의 측면에서 6과 관련된 수, 곧 666, 600, 66, 60, 6들이 부정적인 수로 사용되는 곳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316쪽)
이 책의‘부록’에는상징의 문법과 묵시록의 구조, 666숫자와14만 4000명의 상징에 대한 해설도 실려 있다.
저자는 “최고의 성지순례 안내서는 바로 ‘성경’”이라며 “성지순례는 성경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느끼기 위한 여행”이라고 전했다. 또 “요한묵시록이 세상 종말에 대한 비밀스러운 신비를 담고 있는 두려운 책이 아니라, 당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희망과 위로, 경고와 권고를 주는 책”이라고 말한다.
염철호 신부는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대학교 부총장이기도 하다. 저서로 「신약성경의 이해 - 바오로 서간」, 「배워봅시다 성경 언어」 등이 있고,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