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시련, 믿음의 고백 담아
[앵커]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신달자 씨가 팔순을 맞아 자신의 문학과 인생을 돌아본 신간을 발표했습니다.
화려한 이력 뒤로 누구보다 고단했던 삶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윤하정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지난 60년간 발표한 천 편이 넘는 시 가운데 182편을 선별한 「저 거리의 암자」, 그리고 그보다 긴 80년의 인생길을 되돌아본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
신달자 시인이 최근 발표한 시선집과 묵상집입니다.
<신달자 엘리사벳 / 시인>
"제가 이번에 팔순이었어요. 80이라는 인생의 숫자가 미래는 얼마 남지 않고, 80년은 길었으니까 제 인생을 되돌아보는, 그래서 이름을 묵상집이라고 붙였어요. 하느님께 저 잘 살았는지 묻는다고 할까요."
작가로서 유명세와 교수로서 안정적인 삶까지 누린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세 단어로 표현하면 묵상집의 제목처럼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라고 말합니다.
숙명여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 등단했지만 결혼과 함께 펜을 놓았고, 아이 셋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 듯했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의 오랜 병 수발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신달자 씨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수필집 「백치애인」, 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형편이 나아졌고, 쉰 살에는 교수의 꿈도 이뤘습니다.
하지만 고행은 이어졌습니다. 남편에 이어 시어머니도 거동이 힘들어졌고, 그 끝에 자신도 유방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미치고 흐느끼며 견뎌온 삶, 하지만 그 사이 함께 걸어온 믿음과 시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습니다.
<신달자 엘리사벳 / 시인>
"인간이 감당할 만한 무게가 아니었어요. 고행이었지만,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부를 사람이 생긴 거예요. 그리고 나는 시인이니까 이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는 언어로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명감이 그 고통을 통과하게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감당 못할 숱한 감정을 '시'라는 가장 절제된 몇 마디 단어로 표현해 온 신달자 씨.
시인은 치열하게 젊음을 통과하고 있는 청년부터 인생의 황혼을 걷고 있는 노년에게까지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는 매일을 당부합니다.
또 사랑과 용서 등 평범하지만 꼭 필요한 표현들을 강조합니다.
<신달자 엘리사벳 / 시인>
"사실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90살 노인까지 처절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80년을 살아보니까 사소한 이런 낱말 하나하나가 어려울 때 힘이 되더라고요. 잘못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이 말들이 그마나 고된 삶을 살아가면서 버틸 수 있는 내적 힘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사소한 것을 놓치지 마라!"
CPBC 윤하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