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장편 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펴낸 김홍신(리노) 작가
“죽은 사람이니 명복을 빌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에게도 부모 형제가 있을 테고…. 그냥 혼자 가서 기도나 해주려던 건데…. (중략) 십자가를 꽂고 ‘좋은 곳에 가서 편히 쉬라’고 잠시 기도한 것뿐입니다.”(72쪽)
1971년 7월 1일 0시경, 무장한 채 휴전선을 넘은 북한군 장교들이 사살됐다. 대간첩작전을 이끈 철책선 부대 소대장은 매장 절차가 진행되기 전까지 방치된 시쳇더미에 십자가를 꽂아주고 명복을 빌었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김홍신
해냄
직접 겪은 이야기 50년 만에 책으로
“1971년 7월 1일 새벽 0시 25분에 상황이 종료된 건 맞습니다. 나뭇가지를 꺾어서 십자가를 만들어 꽂고 기도한 것도, 보안대에 불려간 것도 직접 겪은 일이에요.”
6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를 발표한 김홍신(리노, 76) 작가를 만났다. 시대적인 배경이며 가톨릭 신자이면서 문학도인 주인공 한서진이 저자와 중첩된다고 묻자, ROTC(학군단) 출신인 그가 군복무 때 직접 겪은 일이란다.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잘못한 거죠. 하지만 영화나 소설을 보면 적장이 죽었을 때도 모자를 벗고 예의를 표하잖아요. 사람이 죽으면 흙이 되는데, 흙을 미워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다행히 청년 김홍신은 보안대에 불려가 조사받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설 속 한서진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위반한 이른바 ‘빨갱이’로 몰려 형무소에 수감된다. ‘적인종’(赤人種, 빨간색 인간)으로 분류돼 어려운 형편에서 애써 쌓아온 이력과 사랑하는 가족마저 잃게 된다. 억울한 상황을 호소할 데도, 도움을 받을 사람도, 희망이나 미래도 없이 그저 복수만을 생각하는 존재로 변해 간다.
“그 시절에는 줄거리의 정돈이 잘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애도할 일이 많더군요. 우리 사회에 양극화, 적과 아군에 대한 극단론이 너무 팽배하고, 용서는 드물어졌죠. 모두 자기 이익을 위한 거거든요. 그래서 때가 됐다는 생각에 쓰기 시작했어요. 완성 후 손질하는 데만 1년이 걸렸네요.”
반세기 전의 이야기. 지금 청년들에게는 체감이 되지 않는 시대상이고, 주인공이 너무 무력하게도 보인다.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만큼 사회가 달라졌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혀 달라지지 않은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하자원이 없는 국가이고, 강대국 사이 철조망에 가로막힌 섬나라죠. 아직도 전쟁의 공포가 있고. 경제적으로는 기적을 이뤘는데 기쁨을 잃어버렸고, 배고픔은 해결했는데 ‘배아픔’을 해결하지 못했어요.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배아픔을 해결하고 기쁨을 공유해야 해요. 정치권의 양극화로 적대감이 심화됐고, 과거에는 사람들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봐야만 뉴스를 볼 수 있었다면 이제는 휴대전화를 통해 수많은 소식을 바로 접하면서 화나 분노, 짜증이 많아졌습니다.”
신앙이 새겨준 사랑과 용서
그의 책상 앞에는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지만,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라는 붓글씨가 있다고 한다. 그 글귀를 보며 스스로도 반성과 참회를 이어왔다. 하지만 70대 중반이 아닌 20대 초반의 한서진이, 아니 당시 김홍신이 주검이 된 적군의 명복을 빌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영향이 컸다.
“논산 대건유치원에 다녔는데,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이 계셨어요. 그때 베드로 신부님이 영세를 주면서 ‘너는 나를 따르라’면서 ‘리노’라는 본명을 주셨어요. 베드로 다음 교황이 리노잖아요. 초등학교 때 복사를 했는데, 신부님과 수녀님이 지나칠 만큼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통해 남보다 조금 빨리 무르익었다고 할까요. 제가 소설가가 된 것도 그 신부님이 유럽의 많은 만화책을 번역해줬어요. 그게 너무 재밌어서 신부님 방에 자주 들락거렸고, 초등학교 때는 동화나 동시, 중학교 때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성당과 가톨릭이 어려서부터 내 가슴에 심어져 있어서 그런지, 의식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십자가를 꽂아줬던 거죠. 적의 시신인데도.”
그 역시 무명의 소설가로, 스타 작가로, 정치인으로, 또 교수로서 다채로운 인생길을 걸어오며 누구보다 억울한 일도 겪었고, 크게 분노하기도 했으며,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성당을 멀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믿음이 심어준 ‘사랑과 용서’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그를 지켜주었다. 지금껏 쓴 138권의 소설과 산문에도 그 메시지는 섬세하게 녹아들어 있다.
“「인간시장」에서도 주인공이 답답하면 하느님한테 소리 지르잖습니까. 제 소설을 관통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가톨릭 정신이에요. 그래서 이번 책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용서’라는 얘기를 수녀님 입을 통해서 한 거예요. 적군이지만 죽었다면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적군이지만 다쳤을 경우 치료하고 배고프면 나눠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우리 사회가, 전 세계가 공유한다면 평화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김홍신 작가는 지금도 만년필로 직접 글을 쓴다.
글쓰기와 사회봉사로 은총 갚아나가야
현재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 평화재단 고문, (사)의료복지 동의난달 이사장, 동서문학상 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홍신 작가는 지금껏 받아온 사랑을 조금이라고 갚는 데 힘을 쏟고자 한다.
“70이 넘었으니 지금부터는 정리할 나이인데, 인류애, 인간의 본질, 사랑과 용서, 한국인의 정신사 등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교황님을 알현했는데, 유흥식 추기경님이 ‘김홍신 작가는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소설가이고, 논산에 김홍신문학관이 있고, 지금까지 130여 권을 썼고, 국회의원까지 했다’고 소개하니까 교황께서 ‘엄지척’을 해주시더라고요.(웃음) 다 갚을 수 없는 그런 축복을 받았으니, 글쓰기와 사회봉사로 조금이라고 갚고 가야죠!”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