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소설 70여 편 번역해 온 영국 출신 안선재 수사
안선재 수사가 최근 자신이 영어로 번역·출간한 박노해 시인의 시집 「노동의 새벽」을 읽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초대로 1980년 방한
국악·판소리·차 등 전통문화 좋아해
1994년 귀화… 45년째 한국서 살아
영문학 가르치다 한국 시에 관심
최근 박노해 시인 ‘노동의 새벽’ 번역
“한국어 어렵지만 시 번역 재밌어”
“1980년 5월 7일 한국에 왔어요. 열하루 만에 5·18이 있었던 거죠. 시내 곳곳에서 학생들이 행진하고 군인들도 있고?.”
고 김수환 추기경의 초대로 1980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한국을 방문한 안선재(안토니오, 82, 떼제공동체) 수사는 1994년 한국에 귀화했고, 올해로 45년째 이 땅에 살고 있다. 고국인 영국에서보다 더 오랜 세월을 머물고 있는 셈이다.
“서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시간이 흘렀어요. 국악을 좋아해요. 한국무용이나 판소리도 좋아하고, 1990년대 초부터는 한국의 차 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영국도 차가 유명하지만, 한국의 차는 불교문화 속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자연 속에서 만들어진 향이 있어서 좋아요. 그래서 계속 이렇게 한국에 살고 있어요.(웃음)”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좋아한 안 수사만의 색다른 행보는 번역이었다. 영문과 교수로 중세 문학이나 영시를 가르쳤던 그는 역으로 우리의 시를 알고 싶었다. 동료 교수로부터 구상 시인의 작품을 추천받았고, 이내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1988년 구상(요한 세례자)을 시작으로 김광규·고은·서정주·신경림·천상병(시몬)·도종환(진길 아우구스티노)·정호승(프란치스코) 등의 시집 60권, 소설 10여 권을 번역해 영어권 나라에 출판했다.
“물론 안 팔려요.(웃음) 번역하는 것보다 출판사 찾는 일이 힘든데, 북한과 분단된 남한은 섬이잖아요. 이 자그마한 섬의 역사와 전통,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번역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최근 그는 박노해(가스파르) 시인의 「노동의 새벽(DAWN OF LABOR)」을 번역·출간했다. 1984년 출간된 이 시집 역시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세월의 간극을 대변하듯 지금의 시선으로는 낯선 단어와 일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하지만 겉모습이 바뀌었을 뿐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와 인간이 안고 있는 고민은 여전한지도 모른다.
“영어로 ‘Working class(노동계급)’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어졌어요. 하지만 지금도 대다수 사람은 어렵게 살아요. 젊은이들은 제대로 취직이 안 되고, 조금씩밖에 못 벌고, 높은 집값이나 물가로 고생하고, 연금만 받아서는 살 수 없으니까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고. 박노해 시인이 담은 그 시대 노동자들의 목소리, 그 고민 속에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희망이 있어요. 공동체가 없으면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얘기도 있고요.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인간답게, 의미 있게, 아름답게 사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번역하게 됐어요.”
박노해 시인이 과거 중동지역 구호활동 중에 카메라에 담은 모습을 전시한 ‘올리브나무 아래’ 전의 영어 텍스트도 안 수사의 손을 거쳤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그 안에서 희망과 아름다움을 낚는 시인의 마음에 힘을 보탠 것이다.
그가 건넨 명함엔 서강대 명예교수, 단국대 석좌교수, 왕립아세아학회한국지부 명예회장 등 부지런히 달려온 지난날이 보인다. 최근에는 한국 교회사 관련 서적을 번역하느라 바쁘다.
“19세기 조선에 온 신부님들은 모두 프랑스 출신이라 자료도 다 불어예요. 한국에 오기 전 10년간 프랑스에서 살았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영어로 작업하고 있는데, 양이 많아서 언제 끝날지 몰라요. 벌써 80살이 넘었으니까 할 수 있는 동안 하고, 할 수 없게 되면 못하겠지(웃음).”
여전히 한국어가 어려워 단어 하나하나를 사전에서 찾을 때가 많다는 그는 그럼에도 우리 글, 특히 시를 번역하는 일이 재밌단다. “현실 뒤에 있는 현실, 그 삶의 의미는 오로지 시만 표현할 수 있다”고. 이내 가장 좋아하는 시라며 천상병의 ‘귀천’을 암송하는 노수사의 모습에서 묘한 울림이 전해진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