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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의 클래식 순례] 아르보 패르트의 ‘주님, 평화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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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오래전 세상을 떠난 작곡가와 그들의 작품을 떠올립니다. 19세기 후반부터 동시대 음악보다는 ‘과거의 명작’이 클래식 음악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생겨난 현상입니다. 물론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하지만, 우리 시대의 음악에도 좀 더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rt, 1935~)는 21세기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현존 작곡가 중 한 명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통계 웹사이트인 ‘Bachtrack’에 따르면 패르트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 연속 그리고 2022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현존 작곡가’ 부분 1위로 선정됐습니다. 2023년에도 2위를 차지했습니다.


에스토니아(당시 소련) 출신인 패르트는 젊은 시절 에스토니아 라디오 방송의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작곡가로도 활동했는데, 처음에는 12음 기법과 음렬주의를 활용한 난해한 음악을 주로 썼습니다.


하지만 모더니즘을 적대시했던 소련 당국은 그의 음악을 불편하게 여겼고, 노골적인 비난은 1968년에 발표한 ‘크레도’에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패르트는 8년이나 작곡을 하지 않고 침묵했는데, 그러면서 차츰 그의 음악적 관심은 과거로 향했습니다. 특히 그레고리오 성가와 르네상스 교회 음악, 정교회 음악에서 큰 감동을 받아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1980년에 서방으로 이주한 뒤부터 3화음과 단순한 리듬을 중심으로 간결하고 명상적인 음악을 발표해 국제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패르트는 자신의 음악을 ‘한 줄기 빛’으로, 청자(聽者)를 ‘프리즘’에 비유했습니다. 즉 침묵과 여백이 중요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 평화를 주소서’(Da Pacem Domine)는 옛 음악과 현대 음악의 어법이 조화를 이룬 패르트의 음악 미학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안티폰(교송)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저명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인 조르디 사발(Jordi Savall)의 위촉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04년 3월 11일 일어난 마드리드 폭탄 테러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콘서트에서 연주하기 위해서였지요.


패르트는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있고 이틀 후에 작곡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5분 정도의 짧은 곡이고 화성적인 변화나 극적인 기복도 별로 없이 느리게 흘러가지만, 그 단순하고 명상적인 분위기 안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어 큰 감동을 줍니다.


패르트는 본래 이 곡을 네 성부의 무반주 합창곡으로 썼지만, 초연 이후 큰 사랑을 받으면서 훗날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혹은 악기로만 연주하는 편성 등 다양한 형태로 편곡했습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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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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