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 이름이 저에게 딱 맞아요! 제 이름은 이제 마르코입니다. 저는 마르스 신처럼 무기를 들 겁니다. 복음이라는 무기를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처럼 언젠가 로마나 알렉산드리아까지 가게 될지도 모르죠.”(106쪽)
예루살렘 겟세마니에서 올리브 농장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소년 요한. 평범하게 지내던 어느 날 운명을 뒤바꾸는 사건을 만난다. 키드론 골짜기에서 병사들에게 붙잡혀 가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요한은 걸치고 있던 아마포를 벗어던지고 도망친다. 그로부터 30년 후, ‘마르코’라는 로마식 이름을 받은 소년은 특별하고 신비로운 그분 생애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이야기 속 소년은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 마르코다. 마르코 복음서(원문에 따르면, ‘마르코에 의한 복음서’)는 70년 초 네 복음서 중 제일 먼저 쓰였다. 하지만 저자는 교회 전통상 ‘마르코’라고 할 뿐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마르코라는 이름은 복음서 자체에 나오지 않고, ‘마르코에 의한 복음서’라는 제목도 2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필사본에 등장한다.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그를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일인으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지지만, 고대를 통틀어 단 한 명의 마르코가 등장하기에 대다수 비평가는 마르코 복음서를 쓴 이가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사도직 협력자인 요한 마르코와 동일인으로 여긴다.
이 책은 이런 전제하에, 마르코라는 로마식 이름을 얻은 요한이 첫 복음서를 쓰기까지의 모험을 전기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로마에 이르는 마르코의 생애와 여정, 그가 복음서를 쓰게 된 경위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냈다.
성서학자이자 교수로 활동하는 장필리프 파브르 신부는 소설 장르를 이용했지만, 전공을 십분 활용해 역사적이고 성서적인 배경을 충분히 살렸다. 역사상 거대한 사건이 벌어진 연대순, 도시와 지역에 관한 지리적인 묘사, 로마 제국의 정치·경제·사회 기능 방식,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 마르코가 복음서를 집필한 방식을 선택한 내력, 고대의 문자 또는 항해에 관한 지식 등 모든 내용을 검토해 플롯을 잡았다.
소설 방식으로 책을 쓴 것에 대해 저자는 “소설은 등장인물의 마음속 변화를 암시하고 심리를 다시 구성하게 해준다”면서 “또 줄거리를 숨 가쁘게 진행하는 동시에 마르코 복음서의 훌륭한 구성이 탄생한 비밀을 엿볼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글 속에서 마르코는 잡혀가는 예수님을 보고 도망친 자신에 대한 수치심,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받은 모함 등 여러 가지 일로 얻은 상처를 통해 점점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그런 단단해짐 속에 그는 예수님 앞에서 부끄러운 행동을 한 자신을 마주하며 복음서를 쓰는 용기를 얻는다.
세밀하게 묘사된 당시 공간적 배경 속에 마르코의 생애와 복음서의 탄생 과정은 역사 드라마를 보듯 생생하고, 흥미롭다. 그의 면모는 온갖 일에서 상처받고 어려움을 겪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한다. 아울러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한편 마르코 복음서를 새롭고 웅숭깊게 이해하는 계기를 준다.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허영엽(마티아) 신부는 추천사를 통해 “성경의 행간과 교회 전승을 깊이 이해한 바탕 위에, 뛰어난 상상력과 소설로서의 흥미가 가미된 좋은 작품”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