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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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의 클래식 순례]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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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위령 성월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예부터 죽은 이들이 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했고, 그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전례가 바로 ‘죽은 이를 위한 미사’(Missa pro defunctis)입니다. 흔히 ‘레퀴엠’이라고 불리는데,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로 시작하는 입당송의 첫 단어가 ‘Requiem’(안식)이기 때문입니다.


중세 시대의 단성가 레퀴엠 이래 수많은 작곡가가 레퀴엠을 썼습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작품을 듣다 보면 시대와 작곡가에 따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름을 느낍니다. 가령 르네상스 시대 대가들의 레퀴엠은 영원한 안식과 구원에 대한 믿음을 차분하고 편안하게 묘사한 곡이 많습니다. 옛사람들은 죽음을 좀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꼈던 걸까요?


하지만 바로크 시대 이후 그전까지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부속가 ‘진노의 날’(Dies irae)을 강조하면서 어둡고 극적인 레퀴엠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모차르트와 베르디의 레퀴엠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오늘 소개하는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의 레퀴엠은 19세기가 끝날 무렵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그런 흐름을 거부하고 다시 옛 전통으로 돌아간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포레는 자신에게 죽음이란 “고통스러운 경험이 아니라 행복한 해방이자 천상에서의 행복에 대한 열망”이라는 신념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서 수많은 장례식에서 연주하면서, 자신은 뭔가 다른 걸 써보고 싶었다고 했지요.


그의 레퀴엠에는 이런 낙관적인 인식이 작곡가 특유의 섬세하고 우아한 음악으로 구현되었습니다. 포레는 비극적이고 어두운 ‘진노의 날’을 삭제했는데, 다만 그중 일부인 ‘자비로우신 예수님’(Pie Jesu)을 따로 불렀던 옛 프랑스 전통에 따라 독창 소프라노가 부르는 아름다운 ‘자비로우신 예수님’을 삽입했습니다. 


그리고 장례 예식에서 부르는 ‘저를 구원하소서’(Libera me)와 ‘천국에서’(In Paradisum)를 덧붙여 음악이 희망에 찬 분위기에서 끝날 수 있도록 했지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전례가 개정되면서 ‘진노의 날’이 레퀴엠 미사에서 삭제된 걸 생각하면 포레의 혜안이 더욱 인상적입니다.


포레는 1888년 1월 자신이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던 파리의 마들렌 성당(La Madeleine)에서 열린 한 장례식에서 레퀴엠을 초연했습니다. 그 뒤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1900년까지 이런저런 수정을 거듭해서 여러 가지 판본이 만들어졌습니다.


대중적으로는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마지막 판본이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간결하고 실내악적인 첫 번째 판본을 더 좋아합니다. 전자가 콘서트를 위한 레퀴엠이라면, 후자는 성당에서의 소박한 장례 미사를 위한 레퀴엠이라고나 할까요. 가령 ‘거룩하시도다’(Sanctus)에서 합창 위를 떠다니는 아름다운 독주 바이올린은 들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줍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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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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