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성탄을 축하하고 새해를 맞으면서도 지금 우리는 국가적 혼란과 비극적인 사고에 어두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오늘은 예로부터 교회에서 주님께 탄원과 호소를 드리며 불렀던 노래, <예레미야의 애가>를 소개합니다.
애가는 일찍부터 교회 전례에 쓰였지만, 특히 16세기 중반부터 영국 작곡가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많은 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 1505~1585)의 작품입니다.
영국 왕 헨리 8세는 1521년 마르틴 루터의 주장을 반박한 글을 발표해서 레오 10세 교황으로부터 ‘신앙의 수호자’(Fidei Defensor)라는 호칭까지 받았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1534년, 자신을 영국 교회의 머리라고 선포한 이른바 ‘수장령’을 선포하며 가톨릭교회와 결별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가톨릭교회를 박해하는 법과 수도원 폐쇄령을 통해 800곳이 넘는 수도원을 폐쇄, 해산하고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악보와 악기가 파괴되었고, 수도원을 통한 음악가 양성과 교육이 붕괴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이어졌던 영국의 교회음악 전통은 이렇게 일거에 단절되었습니다.
오늘날 ‘영국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마스 탈리스도 이때 몸담고 있던 월텀 수도원이 없어지면서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 후 1550년대에 세 군주(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를 거치며 영국은 국교회(성공회)와 가톨릭교회를 오가는 혼란을 겪었는데, 이에 따라 교회음악도 요동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장엄하고 화려한 라틴어 교회음악 전통을 간직했지만 국교회는 잘 들리고 노래하기 쉬운 영어 교회음악을 강제했기 때문입니다.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탈리스는 평생 가톨릭 신앙을 유지했지만, 시대적 상황에 순응하며 어떤 양식이든 놀랄 만큼 자연스럽고 평온한 작품을 썼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에 오른 뒤 영국 가톨릭신자들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미사는 불법이 되었고, 많은 성직자가 처형되었으며, 국교회 예식에 참여하지 않으면 벌금이나 투옥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 신앙을 간직한 많은 음악가는 황폐하게 무너진 예루살렘 도성을 바라보는 예언자의 노래를 빌어 고통받는 영국 가톨릭교회의 현실을 은밀하게 표현했습니다.
탈리스가 쓴 두 곡의 애가는 모두 ‘예루살렘이여, 주님에게로 돌아오라’라는 가사로 끝나는데, 분명한 상징적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작곡가는 가사를 선명하게 드러내라는 규제를 지키면서도 간결한 선율과 섬세한 반음계로 극적인 효과를 더했습니다. 그렇게 애가에 담긴 깊은 슬픔과 탄원의 감정이 새로운 힘을 얻었는데, ‘밤이면 울고 또 울어’(Plorans ploravit) 같은 부분에는 심오한 비애감이 있습니다. 지극한 아름다움 안에 깊은 슬픔이 담긴 감동적인 걸작입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