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사순 시기다. 사순(四旬)의 ‘40’이라는 숫자는 그리스도께서 세례받으신 후 공생활을 시작하기까지 광야에서 단식하며 기도했던 40일에 근거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곁에 두면 좋을 책을 골라봤다.
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 / 로널드 롤하이저 신부 / 이선정 옮김 / 허찬욱 신부 감수 / 생활성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예수님의 많은 가르침 중에 유독 가혹하게 들리는 이 말씀이 담고 있는 뜻은 무엇일까? 「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을 주심으로써 응답하십니다. 제임스 마틴 신부의 말처럼, 부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때에 오지 않으며, 부활의 방식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놀라운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148쪽)
가톨릭교회의 구원론은 ‘하느님은 고통을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분이심’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즉 하느님은 ‘구조’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다. 이것이 십자가 안에 숨겨진 핵심적인 계시다.
로널드 롤하이저(오블라티 선교 수도회) 신부가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구원의 관점에서 바라본 저서 「The Passion and the Cross」(2015)를 번역한 이 책은 희년을 살고 있는 ‘희망의 순례자들’에게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큰 울림을 전한다.
사순, 희망의 시간 / 몽포르 드 라수스 생저니에스 신부 / 안영주 옮김 / 바오로딸
“사순 시기는 회심과 성숙의 시간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어 뜻을 행하시게 하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도록 의탁해야 합니다. (중략) 사순 시기는 삶에서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도, 단식, 나눔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9쪽)
「사순, 희망의 시간」은 프랑스 투르교구 본당 사제로 사목하고 있는 몽포르 드 라수스 생저니에스(생 마르탱 공동체) 신부가 2025년 희년을 맞아 집필한 사순 묵상서다. 시편과 전례를 기반으로 묵상과 조언을 더했다.
책은 하루의 기도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사순 시기 매일 기도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먼저 사순 시기 전례의 화답송 시편으로 기도를 준비하고, 주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을 경청하며, 우리 삶에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드린 뒤 기도·단식·나눔을 실천하고, 오늘 주신 말씀을 토대로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끈다.
희년, 희망의 순례자 / 김민수 신부·오현희(체칠리아) /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원장 김민수 신부)이 2013년 이후 열두 번째 펴내는 필사용 사순묵상수첩이다. 책은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 매일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걷기를 권한다. ‘오늘의 복음’을 직접 필사할 수 있도록 구성했고, 실천 여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꾸몄다.성녀의 작은 길 / 성녀 소화 데레사 / 이인섭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성녀의 작은 길」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중요하게 여긴 삶의 가치를 담은 책이다. 성인의 영성 생활의 핵심은 ‘작은 길’로, 사소한 일들을 사랑으로 행하고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을 신뢰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책은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시·편지에서 메시지를 발췌해 엮었다.
“제가 영적 메마름의 상태에 있을 때, 기도할 수도 없고 덕행을 실천하기도 힘들 때, 나의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작은 기회, 사소해 보이는 일들을 찾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침묵하고 싶고 권태로울 때, 미소를 짓고 배려하는 말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기회조차 없다면, 저는 적어도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그분께 계속해서 말합니다.”(121쪽)
성인은 24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온전히 하느님을 신뢰하며 기도와 희생을 바쳤고, 그 영성이 담긴 저서가 단기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큰 관심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단순함·사랑·신뢰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게 한다며 누구나 이 ‘작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메일린의 기적 / 에마뉘엘 트란 /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이 사건으로 기도는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유일한 길이 되기 시작했다. 기도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 최후의 안식처가 된다.”(63쪽)
안락사 권유까지 받았던 한 아이의 경이로운 회복을 담은 「메일린의 기적」이 출간됐다. 책은 아버지 에마뉘엘 트란의 기록이다. 메일린은 세 살이던 2012년 음식이 기도에 걸리면서 몇 분 동안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식물인간 판정을 받는다. 사고 후 열흘째 의료진은 영양 공급의 중단을 제안하지만, 가족들은 메일린을 보낼 수 없다. 당시 세례를 받지 않았던 에마뉘엘은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를 드렸다. 주위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학부모에 의해 성인 폴린 자리코에게 전구(성모 마리아나 성인을 통해 바라는 바를 하느님께 전달)로 메일린의 치유를 기원하는 9일 기도가 시작되고, 기도는 학교 울타리는 물론 국경을 넘어 확산된다. 그리고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은 현실이 된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난 거라고 확신한다. 기도가 가장 높은 곳까지, 하느님에게까지 들렸으리라고 확신한다. 지금 우리가 매일 누리고 있는 선물의 헤아릴 길 없는 가치에 비하면 우리의 감사는 아주 미미하다.”(242쪽)
메일린은 성장해 어느덧 승마를 즐기는 청소년이 됐다. 이 ‘기적’은 지난 2020년 바티칸에서 공인되며, 폴린 자리코 성인은 2022년 복자로 선포됐다. 메일린의 기적은 지난해 cpbc 가톨릭평화방송을 통해 다큐멘터리로 제작·방영되기도 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