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토르 / 김용해 신부 / 생활성서
서강대 교수인 예수회 김용해 신부
안식년 맞아 홀로 배낭 짊어지고 걸으며
길에서 만난 자연·사람·삶 이야기 담아
한 해 20여만 명의 순례자가 찾는다는 산티아고. 그래서인지 국내에서도 해마다 어김없이 관련 책이 출간된다. 이번에 공개된 책은 철학자 사제의 산티아고 순례기 「비아토르」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주창한 개념인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는 ‘길 위의 인간’이라는 뜻으로, 인간이 참 자신이 되기 위해 일생을 통해 순례하는 존재임을 부각한다.
책 「비아토르」는 예수회 사제이자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김용해 신부가 2018년 안식년을 맞아 산티아고 800㎞를 순례한 여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사제나 교수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배낭 하나 짊어지고 홀로 걷고자 했다.
“나는 한 인간으로, 그보다도 자연 안의 한 존재로, 또 다른 타자, 즉 자연과 소위 정신적 존재라 불리는 또 다른 인간과도 소통하고 싶었다. 머리보다는 몸으로 체험하는 순례, 지식보다는 경이감을 체험하고, 나(주체)보다는 자연과 타자에 집중하는 순례를 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이 순례를 통해서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더 깊이 알고 싶었다.”(9쪽)
책은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프랑스 길’이라 불리는 순례길을 묵묵히 따라간다. 하루 20~30㎞를 걸으며 보낸 29일은 기도와 묵상, 사람들과 나눈 대화, 불쑥불쑥 찾아오는 추억과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에 대한 숙고로 채워진다. 그 길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다. 흥미로운 점은 여느 순례기와 달리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몇 점의 흑백 이미지가 있을 뿐 철학자답게 고독과 사색의 글이 주를 이룬다.
“존재를 탐구하는 이들은 그 어떤 존재도 하나의 의미로 규정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우주 안의 어떤 존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다른 한편, 나는 오직 유일무이한 나로서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느끼고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전통적인 스콜라 철학에서는 인격(Persona) 개념을 통해 인간이 개별적 실체(동일성)이면서 동시에 변화와 소통 가능성의 원리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 순례자들도 변화와 소통의 여정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44쪽)
저자는 “매일 새로운 사건을 통해 내 마음 깊은 곳에 울리는 소리를 적었고, 점점 많은 걸음이 축적되고 의식이 침잠하자 잠을 자다가 꿈에서 그 소리를 듣기도 했다”며 “이 순례가 나와 하느님을 더 잘 깨닫는 계기기 되었음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용해 신부는 독일 뮌헨 예수회 철학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 사회철학·윤리학·인간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서강대 신학대학원장·생명문화연구소장 등을 역임했고, 푸르메 재단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