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로는 최초로 복자품에 오른 카를로 아쿠티스(Carlo Acutis, 1991~2006)의 짧은 생애와 깊은 신앙을 담은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한 권은 주변인의 증언을 중심으로 엮은 전기 「하느님의 인플루언서」(생활성서)이고, 또 다른 책은 이를 만화로 담아낸 「카를로 아쿠티스」(바오로딸)다.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자기 몰입, 고립, 공허한 쾌락과 같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세상에서도 창의력과 천재성을 보여 주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가경자 카를로 아쿠티스가 그러합니다. (중략) 그는 새로운 통신 기술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아름다움과 가치들을 전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04~105항)

복자 아쿠티스는 1991년 그의 부모가 일로 체류 중이던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린 나이에도 매일 미사에 참여하며 7세에 첫영성체를 허락받았다. 여느 청소년처럼 스포츠·게임·영화·동물 등도 좋아했다. 특별한 점이라면 성체성사의 신비를 깨달아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깊이 사랑했고, 성모님에 대한 신심도 매우 깊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쉽게 기도할 수 있도록 도식과 자료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매스미디어 관련 소질을 활용해 성체성사의 기적 136가지를 정리한 국제 전시회를 기획하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성모님 발현을 정리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등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통해 본당과 교황청 기관에도 기여했다. 무엇보다 교회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만 국한하지 않고 친구들과 자연스럽고 기쁘게 나누었다.

“카를로는 선행을 하는 데 있어 친구나 지인, 인종이나 종교를 차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한 인물을 만났고, 그를 이웃에게 알리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외향적 성격을 확장하여 예수님을 전하는 데 사용하고자 했다.”(「하느님의 인플루언서」 245쪽)

복자 아쿠티스는 세상을 떠나기 불과 열흘 전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겉보기에 단순한 독감 같았던 병이 급성 백혈병이었다. 이로 인해 15세에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삶은 ‘성덕의 평범한 길을 걸어간 현대 청년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참된 성덕이란 특별한 업적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데 있음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2006년 세상을 떠난 이후 세계적으로 그에 대한 공경이 급속히 확산됐다. 그의 이름을 딴 성당과 경당이 세계 곳곳에 세워졌고, 청소년 단체와 복음화 캠페인 등 다양한 공동체가 그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하느님의 인플루언서」는 그의 유년 시절부터 임종에 이르기까지의 삶과 사후의 기적·성덕에 대한 인식·시복과 시성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일상의 사진과 생전에 즐기고 사랑했던 반려견과 반려묘·묵주·연 등 다양한 동물과 사물에 대한 그의 그림들도 수록해 평범한 소년의 삶과 내면세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담아낸다. 「카를로 아쿠티스」는 이를 흑백 만화로 축약해 더욱 친근하게 손짓한다.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는 본래 지난 4월 27일 바티칸에서 시성될 예정이었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연기됐다. 레오 14세 교황은 최근 아쿠티스의 시성식을 오는 9월 7일 연다고 밝혔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