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가 시작됐다. 한 해의 절반 넘게 달려온 데다 무더위까지 더해져 몸과 마음이 지쳤다면 책장을 넘기며 휴식을 취해 보면 어떨까. 책 속에서 피정도 여행도 순례도 하며 위안을 얻어보자.
리추얼, 하루의 리듬 / 안셀름 그륀 신부 / 황미하 옮김 / 가톨릭출판사
안셀름 그륀 신부의 신간 「리추얼, 하루의 리듬」이 나왔다. 리듬과 라임을 맞춘 듯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리추얼’은 무슨 뜻일까. ‘리추얼(Ritual)’의 사전적 의미는 ‘(특히 종교상의) 의식 절차, (제의적) 의례’. 결국 이 책은 일상에 조화로운 흐름을 선사하는 의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무언가 대단한 의례가 아니라,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의식들을 통해 숨 가쁘게 흘러가는 현대사회에서 자기만의 삶의 리듬을 찾도록 안내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와 제 삶을 축복합니다. 이는 저만의 의식입니다. 이로써 ‘그저 살아지는 하루’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임을 확인합니다.”(11쪽)
“밤은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언제 어디서 하느님을 만났는지, 무엇에 감사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특별한 날로, 하느님과 함께한 날로 묵상해야 합니다.”(38쪽)
저자는 사회학자 칼 가브리엘의 말을 인용해 “단순한 형태로 반복해서 표현하는 행위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바꾸며, 이것이 의식”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의식, 리추얼을 통해 삶의 정돈된 리듬을 찾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제시한다. 더불어 교회 전례력에 따라 거행되는 다양한 의식과 개인의 소소한 의례를 통해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영적 여정으로 초대한다.
주님의 기도로 피정하기 / 파블로 도밍게스 프리에토 신부 / 강기남 신부 옮김 / 성바오로
‘피정’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해 자신을 살피는 일이다. 그렇다면 대부분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사제들은 어떻게 피정할까?
“사실 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를 통해 주님과 깊이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13쪽)
「주님의 기도로 피정하기」는 스페인 산 다마소 신학대학 교수였던 파블로 도밍게스 프리에토(1966~2009) 신부가 세상을 떠나기 25일 전 콜롬비아교구 사제들을 위해 피정을 지도하며 강의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사제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책에 담긴 묵상과 성찰은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른 사제들을 위한 피정 지도에 특별한 소명을 느꼈던 파블로 신부가 제시하는 좋은 피정을 위한 지침은 △침묵을 지키는 일 △개인 기도를 꾸준히 드리면서 주님 앞에 머무는 시간을 가지는 것 △피정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과 배움을 메모하고 정리해 두는 것 △전례에 성실히 임하는 일이다. 파블로 신부는 또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어떤 기도도 주님의 기도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다.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 즉 주님의 기도보다 더 효과적으로 드릴 수 있는 기도는 없다’라고 말씀하셨다”며 ‘주님의 기도’를 묵상할 것을 강조한다.
독일 간 김에 순례 / 차윤석(베네딕토) / 분도출판사
유럽에는 일상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순례지가 곳곳에 있다. 인기 관광지로 알려진 곳 외에도 지역민의 신앙심이 수백 년, 때로는 세기를 넘겨 깊게 뿌리내린 성지와 신앙의 명소가 많다.
「독일 간 김에 순례」는 책 제목대로 출장이나 여행 등으로 독일에 갈 일이 있다면 원래 일정에서 자투리 시간을 마련해 하느님을 만나는 순례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번 책에서는 종교개혁의 거대한 물살에서 가톨릭 신앙을 고수한 뮌헨을 비롯한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수도원과 성당들을 소개한다. 성모 신심의 도시 뮌헨, 검은 성모자상으로 유명한 알퇴팅, 유럽 초창기 복음의 선구자로서 각 지역 신앙의 보금자리였던 베네딕도회 수도원 등이 그림 같은 주변 풍경과 함께 펼쳐진다.
곳곳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사진부터 웬만한 여행 가이드 책보다 많은 지도와 교통 및 맛집 정보 등은 저자에게 누적된 콘텐츠를 가늠케 한다. 특히 순례지의 미사와 숙소 등 순례자에게 필요한 실용적인 내용도 눈에 띈다.
저자는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친 뒤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중세문학을 공부했다. 가톨릭평화신문에서 ‘차윤석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를 연재하고 있다.
스페인을 순례하다 / 전용갑(요셉) / 휴인
스페인의 성지라 하면 무릇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라 불리는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맨발의 가르멜회 창립자들인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성지가 모여 있는 스페인 중부와 남부 지방(카스티야·안달루시아)부터 예수회를 설립한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성 프란시스코 데 하비에르의 자취가 남아 있는 북부와 동부 지방(바스크·나바라·카탈루냐), 사라고사의 필라르 성모, 국토수복전쟁의 시발점이 된 코바동가 성모 등 의미있는 성지가 많다.
「스페인을 순례하다」는 구성이나 분량에 있어 다소 묵직한 책이다. 스페인의 이들 성지를 모두 담아 실용적인 안내서를 펴내려던 당초 계획을 변경해 우선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만을 묶었다. 성인과 성지에 대한 전기적·역사 문화적인 서술이 많고, 삶과 시대상이 얽히다 보니 서술 구조가 복잡해져 조금은 학술적인 형식을 띤다.
저자는 그러나 “이 책이 ‘무늬만 학술서’일 뿐 순례객을 위한 안내서라는 원래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특히 성지에 대한 내용은 2023~2024년 여름마다 답사를 통해 체득한 내용을 중심으로 수록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한국외대에서 스페인어로 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학교에서 라틴아메리카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외대 스페인어통번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