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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의 온유함

[월간 꿈 CUM] 테마로 읽는 성경 - 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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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_ 김 사무엘


십자가는 예수께서 온전히 품으신 하느님의 온유함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 생명까지 내어놓으시면서 하느님의 온유함에는 ‘여기까지만’이라는 한계가 없음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예수님의 고통만이 아니라, 그를 통해 온 세상에 퍼져나가는 하느님의 온유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두 팔은 십자가에 결박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뻗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프랑스 조각가 제르만 리시에(Germaine Richier, 1904~1959)는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십자가의 종목은 거의 감추어져 있고 횡목은 아예 없습니다. 예수님의 몸 자체가 십자가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팔이 나무에 못 박혀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팔은 세상을 다 품에 안으려는 듯이 활짝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은 아래로 휘어 있습니다. 인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듯이 말입니다. 그 모습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품어 안는 형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의 온유함을 궁극적으로 체험할 때는 지금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여기서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지 않으십니다. 눈물의 원인인 고통을 없애지도 않으시고, 그 까닭을 설명해 주지도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실 뿐입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예레 14,17)

당신께서 정하신 마지막 때가 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마지막 날에 있을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이사 25,7-8)

그때가 되면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더는 눈물 흘릴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의외로 성경에는 다른 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이 마지막 행위를 위해 유보되어 있
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온유함을 결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그 놀라운 행위의 증인이자 수혜자가 될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묵시록도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묵시 7,17)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3-4)


하느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리라는 약속이 두 번이나 반복되며 더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신다는 말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더는 어떤 베일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말 그대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함께 흘리
신 눈물까지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얼굴을 뵙기를 간절히바란 엘리야와 모세를 비롯한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죽음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 마지막으로 이루어질 일입니다. 죽음의 패배는 이 궁극의 행복인 지복직관(至福直觀)으로 향하는 관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이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행복하여라, 우는 사람들!(우리말 성경에는 ‘슬퍼하는 사람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실 이 일을 가로채는 대신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심으로써 마지막에 있을 일을 미리 다른 형태로 보여주셨습니다. 그 또한 온유함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발을 닦으셨을 때 제자들의 놀라움이 얼마나 컸습니까? 하지만 그 놀라움조차도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으실 일에 비하면 작을 것입니다.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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