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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의 편지 : 사막의 의미

[월간꿈CUM] 영성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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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저는 사막의 성인 안토니우스(Antonius, 251~356년)의 생애를 쓴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년/298년~373년)입니다.1)

안토니우스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삶에서 반드시 다가오는 악의 유혹과 영적 투쟁의 삶 그리고 하느님의 도우심에 대해서 편지를 썼더라구요! 이후에 안토니우스가 저에게 연락해서, 여러분들에게 유익이 되는 내용을 전해주면 좋겠다고 청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이 아니라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주의자들 때문에 박해를 받아서 많은 시간 사막에서 지내면서 했던, 제 경험과 성찰을 통해서, 특별히 사막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역사적으로 왜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은 사막에서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도 12제자들도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 모두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터전을 잡고 유대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70년 예루살렘 성전 붕괴 이후 살아남은 유대인들 중에 바리사이들이 이끌었던 종교회의인 얌니아 회의(Council of Jamnia, 지금의 야브네)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약 100년경에 이루어진 이 얌니아 회의에서, 바리사이들은 유대인들 안에 섞여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축출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2)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신앙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살던 집과 재산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및 친구들과 헤어져 살아야 했던 많은 이들은 사막으로 도피하게 됩니다. 그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황폐한 사막에서의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에 신앙을 저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꿋꿋이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간 이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현재 여러분들은 이들을 사막의 교부라고 부르더군요! 그들은 먹을것이 거의 없는 사막에 적응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게 됩니다. 또한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독신을 선택하고 ‘정결’을 중요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순명’을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이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덕목 중에 ‘가난’과 ‘정결’ 그리고 ‘순명’을 가장 중요시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사막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사막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그 사막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지키기 위한 곳이며, 이를 위해서 ‘가난’과 ‘정결’ 그리고 ‘순명’이란 덕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활양식이 잉태한 곳입니다.  

둘째, 사막은 단순한 공간적 지형만을 의미하지 않고, 우리가 악의 유혹을 받고, 이를 극복하는 영적인 투쟁의 장소이며, 이를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과 은총을 깨닫는 내적인 마음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셋째, 위와 연관하여, 여러분들의 시대에 살았던, 까를로 카레토(Carlo Carretto, 1910~1988)가 「사막에서의 편지」라는 책에서 ‘사막’을 영적인 고독 속에서 깊이 있는 ‘기도’로 들어가는 관상적 차원으로 언급하기도 했듯이, 하느님과의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심처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막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구원을 위하여, 광야에서 유혹받고 공생활을 하셨고, 스스로 수난받고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였듯이, 세상 구원이란 보편적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구원 경륜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제가 여기서 보기에 여러분들이 사는 곳은 ‘도시화된 사막’인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해서 많은 사람이 깊이 숙고하거나 사고하지 않더라도, 옛날에는 어렵게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더군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여러분들이 노력하지 않아도 편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삶의 조건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고 있더군요!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불행해하고, 상대적인 박탈감에 더 ‘가난’해 하고, 육체적으로나 마음으로나 ‘정결’을 잃고, 자신이나 세상의 뜻에 더 ‘순명’하는 듯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사시는 곳이 바로 ‘신앙을 지키는 사막’, ‘영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사막’,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관상의 사막’, ‘구원 경륜의 사막’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러한 참된 인식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사시는 곳에서도 하느님의 자녀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멘. 

글 _ 이수완 교수 (로마노,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 영성신학)
2014년부터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에서 영성신학을 강의하고 있다. 2019년부터 수원교구 시복시성위원회의 순교영성 강학에서,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 디에고 데 판토하의 「칠극」 등을 영성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및 강의를 하고 있다. 2012년부터 한국가톨릭 신앙인들의 영적인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각 교구 및 본당에서 ‘성인들의 삶과 영성’ 강의를 지속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성인들의 영적인 가르침을 소개하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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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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