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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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의 하느님

[월간 꿈 CUM] 테마로 읽는 성경 _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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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히브리어로 ‘브리트’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에는 하나의 역설이 숨어있습니다. 계약은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순수한 열망에서 비롯되며, 은총에 의한 선택입니다. 모든 인간 가운데 일부를 자유롭게 선택하시어 일방적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창세 17,7)
그렇지만 계약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의 동의, 부르심에 대한 사랑의 응답, 신뢰와 포기에 대한 요청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모세는) 계약의 책을 들고 그것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탈출 24,7)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에 관한 여러 성경 본문은 기본적으로 봉건 군주와 봉신 사이의 관계를 엄격히 규정한 히타이트 문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고대 근동의 영향을 받은(성경은 근동의 문서들 가운데 후대에 기록된 것이기에 이 현상은 당연합니다) 성경의 다른 본문들이 단순한 모방에서 그치지 않고 하느님 신앙 안에서 재해석하여 독창성을 부여하였듯이, 이 본문들도 계약을 군주와 신하 관계의 법적 엄정함을 넘어서 하느님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삶의 차원으로까지 확장합니다. 그래서 계약의 백성은 단지 율법 준수의 의무를 지는 것뿐 아니라 하느님께 불평할 권리까지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 언제까지 마냥 저를 잊고 계시렵니까? 언제까지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시렵니까?(시편 13,2) 
또한, 하느님께 부르짖음과 회개, 찬양과 감사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는 혼인으로도 표현됩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호세 2,21-22)

여기 하느님과의 계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우리말 성경에 ‘신의’로 번역된 ‘헤세드’는 호의, 충실, 진실, 성실, 자애, 사랑의 의미를 모두 품고 있는 풍부한 단어입니다. 이 ‘헤세드’는 마치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아 함께 하는 삶, 나누는 삶을 가능케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 ‘공정’으로 번역된 단어는 ‘미쉬파트’인데, 이 단어는 특히 약자를 향한 정의를 강조합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것은 약자를 돌보시는 하느님의 호의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말 성경에 ‘진실’로 번역된 단어는 ‘에무나’인데, 땅에 견고히 박힌 말뚝처럼 우리를 지탱해 줄 변치 않는 진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하느님과의 계약은 신뢰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는 나오지 않지만, 하느님의 계약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아하브.’ 우리말 성경에는 종종 사랑으로 번역됩니다. 이 단어는 배타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계약에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이모든 것에 앞서 서로를 사랑하고, 오직 서로에게만 충실할 의무가 따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계약에 충실하신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 없습니다.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4-15)

이사야 예언자는 유배 중인 백성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외칩니다. 이미 놀라운 권능으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당신 백성을 구원하신 하느님께서 이제 새 출애굽 사건을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길을 내신 분, 병거와 병마 군대와 용사들을 함께 나오게 하신 분. 그들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꺼져 가는 심지처럼 사그라졌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 43,16-19)

이사야의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계약의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구원할 의지를 갖고 계시다.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구원할 능력이 있음도 이미 보여주셨다. 그러니 포로 신세로부터의 해방이 가까이 왔다.

하느님의 위로는 공허한 말이 아닙니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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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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