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밖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됐다. 병오년, ‘붉은 말의 해’라고 한다. 불의 기운과 말의 역동성이 더해져 어느 때보다 에너지 넘치는 한 해가 기대되는 2026년. 다방면에서 새로운 결의를 다질 수 있는 책들과 함께 달려보자.
평화가 모두와 함께 / 레오 14세 교황 / 가톨릭출판부 편집부 옮김 / 한영만 신부 감수 / 가톨릭출판사
레오 14세 교황 초기 연설과 강론
「평화가 모두와 함께」는 레오 14세 교황이 목자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이후 초기 연설과 강론을 엮은 책이다. 교황이 어떠한 세계관을 지니고 있으며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지 명확한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전 세계를 향한 당부는 물론 각국의 지도자에게 보내는 호소, 주교단과 추기경단을 향한 촉구, 새 사제들에 대한 권고, 청년들에게 건네는 격려 등 폭넓은 청중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모두에게 일관되게 강조하는 점은 바로 ‘평화·일치·사랑·경청’이다. 즉 인간 존엄의 회복, 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행동,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경청, 그리고 가장 약한 이들과의 연대로, 오늘의 인류가 가장 시급하게 회복해야 할 가치들이다. 교황은 신앙의 테두리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도록 요청한다.
“루카 복음사가가 표현한 바와 같이(루카 2,19.51 참조) ‘신발레인(synballein, 마음속에 간직하다-편집자 주)’의 역량, 곧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피상적인 것을 경계하고, 삶의 조각들을 기도와 묵상 안에서 하나로 모으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삶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내 여정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나를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가?”(190쪽)
한영만(라디오바티칸 담당) 신부가 감수했고, 글마다 한 신부의 해제를 더해 교황의 말씀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지구 수도원 / 크리스틴 발터스 페인트너 / 맹영선 옮김 / 생각비행
자연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삶으로의 초대
“나무와 꽃들은 창조된 자기 모습 이외의 다른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거부하지 않음으로써, 어떻게 성도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본질적인 본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우리의 소명을 실현하는 길입니다.”(107쪽)
「지구 수도원」은 빠른 속도와 소비주의, 산만함이 지배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삶으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책이다. 가톨릭 신자이며 영성 신학 박사로 수도원 영성을 현대인의 삶과 연결하는 작업을 해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 지구를 우리의 원초적인 수도원, 즉 최초의 성전으로 간주한다.
인류가 야기한 기후위기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관상’을 언급했다. 관상 수행의 열매 중 하나는 ‘전체성(wholeness)’을 기억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느님 사랑 안에서 존재하고 그 사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지구 수도원」은 창조세계를 마주하는 일상에서 관상을 수행하고, 자연과의 친밀함을 통해 경이와 감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품격 있는 황혼 / 브라이언 그로간 신부 / 김학준 신부 옮김 / 바오로딸
나이듦은 쇠퇴가 아니라 무르익음
만 나이가 통용되고 있지만, 해가 바뀌면 자연스레 한 살이 더해진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특히 어느덧 황혼에 접어들었다면 새로운 한 해가 더욱 남다를지 모르겠다.
「품격 있는 황혼」은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되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갈 것을 당부한다. 책은 나이 듦이 쇠퇴가 아니라, 지난 세월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더 무르익어야 하는 때라고 강조한다. 특히 하느님께서 그 여정에서 함께하신다는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아일랜드의 더블린 밀타운 신학교 학장을 지냈고 현재 영성학 명예 부교수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시·기도문·일화 등을 통해 나이 듦·죽음·죽음 이후의 영광까지, 하느님 나라로 옮겨가는 여정을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일지 깊이 묵상하도록 이끌어 준다.
“너는 늙어가지만 여전히 나의 사랑이다. 나는 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한다. 너의 주름진 손, 앙상한 다리, 하얗게 센 머리카락, 깜박깜박 잊어버리거나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조차 사랑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너의 마음을 사랑한다. 산만함 속에서도 나를 향해있는 너의 마음을!”(60쪽)
영혼과 육신을 살리는 음식이야기 / 노봉수 / 한마음문화사
신앙의 식탁에 차려진 성경 속 음식 탐구
새해의 시작과 함께 가장 많이 하는 다짐은 건강관리,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다이어트일 것이다. 식품에 대해 다양한 책을 집필해온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노봉수(야고보) 명예교수가 「영혼과 육신을 살리는 음식이야기」를 펴냈다. ‘신앙의 식탁’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그간의 책과는 달리 식품과학자의 시선으로 성경 속의 음식을 조명한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늘의 양식 : 성경 속 음식이야기’에서는 성경에 등장하는 음식들의 의미를 탐구하고, ‘신앙과 음식의 만남’에서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리 삶과 밀접한 토마토, MSG 등을 통해 신앙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빵은 성경에서 매우 일상적인 음식으로 등장하지만, 예수님은 이를 통해 깊은 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신다. 빵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기본적인 주식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음식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일상적인 빵을 하느님의 은혜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사용하셨다.”(62쪽)
저자는 “책을 집필하며 구약을 비롯한 성경 해석에 대한 미숙한 부분을 많이 느꼈다”며 “식품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통해 성경을 이해하는 색다른 접근법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