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8일
생명/생활/문화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위로받을 자격

[월간 꿈CUM] 테마로 읽는 성경 _ 위로 (05)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삽화


성경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 온 당신 백성을 위로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열망이 그분의 마음에서부터 솟아오른다고 합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내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츠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호세 11,8)

그렇다면 유다 백성은 하느님의 위로를 받아들여 해방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이사 40,3)

하느님의 거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그곳에서 오실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바빌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광야를 하느님의 영광이 지나오실 수 있는 길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출애굽 사건 때처럼 하느님께서 다시 한번 당신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건너시리라는 믿음을 지니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훗날, 이 말씀은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의 입에 담기게 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 오신다” 하고 말하여라.(이사 40,9)

우리말 성경에는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 계시다’로 번역되어 있지만, 이어지는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를 고려할 때, ‘계시다’보다 ‘오신다’가 더 자연스러운 번역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는 승전하고 개선하는 위풍당당한 임금과 같은 모습만이 아니라, 양 떼를, 특히 가장 약한 양들을 조심스레 돌보는 자상한 목자와 같은 모습도 있습니다.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 40,10-11)

이렇게 위로하시는 하느님은 당신 백성의 ‘고엘’(구원자)이십니다.

“모든 인간이 나 주님이 너를 구해주는 이요 너의 구원자(고엘)가 야곱의 장사임을 알게 되리라.”(이사 49,26) 히브리어 ‘고엘’은 법적인 용어인데, 혈족 가운데 억울한 죽임을 당한 사람의 복수를 해주거나,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아내와 결혼하여 대를 이어주거나, 가난한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등의 의무를 맡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고엘’이라고 선언하심으로써 마치 이스라엘과 혈연관계에 있는 듯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어찌 이스라엘을 돌보지 않고 불행을 두고만 보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고엘’이시기에 이스라엘의 배신으로 깨어진 계약을 어떤 조건도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냥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그 계약을 복원시키기 위한 어떤 일도 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 ‘고엘’은 의무감 때문에 혈족을 돕지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동기는 연민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오직 ‘가엾은 마음’(루카 10,33) 때문에 도와준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 백성의 고통이 하느님의 마음에 연민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이사 54,7-8)

이렇게 하느님의 연민에 기반하여 맺어진 새 계약은 시나이 계약과 다릅니다. 시나이 계약이 계약의 양쪽 당사자 모두에게 의무를 지우는 쌍무계약(雙務契約)이었다면, 이 새 계약에서는 오직 하느님만 의무를 지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계약은, 신실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무를 저버리실 리는 없으니, 이스라엘이 무슨 짓을 해도 깨어지지 않는 영원한 계약입니다.

연민의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아들이기 위한 자격과 조건은 없습니다. 다만 구원으로써 위로하실 의지와 능력이 있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쳐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이사 49,13)

욥을 위로하고자 찾아온 친구들은 이 연민의 하느님을 알지도 못하고 닮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정의의 하느님만을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상과 벌을 내리시는 일에 틀림이 없는 하느님을 옹호한답시고 욥이 겪는 지독한 불행의 책임을 그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위로 대신 오히려 고통만 가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제 탓으로 고통을 겪었는데도, 막상 고통받고 있는 당신 백성을 보신 하느님의 마음은 분노가 자리할 틈조차 없이 연민으로 가득 찼는데 말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1-2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1. 28

시편 48장 11절
하느님, 주님 이름처럼,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