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상 시인(요한 세례자, 1919~2004)의 작품 세계를 통해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는 ‘대긍정(大肯定)’의 시선을 조명하는 강연이 열렸다.
(사)구상선생기념사업회는 설립 20주년을 맞아 1월 30일 서울 명동 온드림 소사이어티 ‘ONSO 스퀘어’에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재홍(요한 사도) 박사를 초청해 ‘반전·평화의 시인 구상과 「구도자의 산책」’을 주제로 강연을 열었다.
시인의 제자로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재홍 박사는 “일생을 시인이자 교육자, 언론인으로 살아가며 가톨리시즘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시사에서 휴머니티를 실천한 인물”이라고 시인을 소개했다.
구상 시인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과 4·19혁명, 군부 독재 시기를 거치며 한국 현대사의 한가운데를 살았다. 6·25전쟁 이후에는 국방부 소속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의 폐허와 조국의 쓰라린 현실을 기록했다.
김 박사는 구상 시인을 “모두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하나가 되는 일원론과 근원적 구원을 열망한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 인민군 유해가 묻힌 묘지 앞에서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쓴 <초토의 시 11-적군 묘지 앞에서>를 언급하며, “구상은 죽음을 모든 인간적 가치를 넘어서는 절대적 차원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적군 묘지 앞에서도 그들의 ‘원한’을 ‘나의 바람’으로 품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또 “<두이레 강아지 눈>에서 시인은 적군과 아군을 모두 두이레 강아지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적군의 죽음을 부정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하느님의 피조물로 바라보는 신앙적 인간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했다.
김 박사는 구상 시인이 싸워온 대상이 ‘이념’이 아니라 꾸밈 말인 ‘기어(綺語)’였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구상은 한 편의 시를 ‘표현하기’ 위해 고투한 시인이 아니라, 내면적 진실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한 시인이었다”며 “기교를 부리거나 어려운 말을 쓰기보다, 알리고 전달해야 할 절박한 언어를 선택해 시를 썼다”고 설명했다.
이날 강연에는 구상 시인의 딸인 소설가 구자명(임마쿨라타) 작가를 비롯해 문학평론가 구중서(베네딕토) 작가, 사회를 맡은 고두현 시인, (사)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인평(아우구스티노) 회장 등 원로 문단 인사들이 함께했다.
한편 구상 시인 선종 20주기인 2024년에는 서울지하철 여의나루역 2번 출구 앞에 ‘구상 시인길’ 표지석이 제막돼, 평생 구도자의 길을 걸었던 시인의 삶과 문학을 기념했다.
변경미 기자 bgm@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