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관하여 / 한병철 / 전대호 옮김 / 김영사
“시몬 베유는 간결하게 말한다. ‘돈, 기계화, 대수학. 현대 문명의 세 괴물.’ 이 괴물들은 순수한 양이다. 높이와 깊이는 깡그리 근절된다. 그리하여 같음의 지옥이 도래한다. (중략) 베유가 말하는 돈, 기계화, 대수학을 현재에 맞게 갱신할 필요가 있다. 현재 문명의 세 괴물은 자본, 디지털화, 인공지능이다. 이 괴물들은 인간을, 정신을 양과 효율의 노예로 격하한다. 우리는 또다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의 노예가 된다.”(140쪽)
「신에 관하여」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씨가 20세기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시몬 베유(1909~1943)의 텍스트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읽은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위로부터 온 힘, 나보다 더 강한 힘, 성 프란치스코가 자주 기도한 곳인 아시시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에서 시몬 베유를 무릎 꿇린 힘”에 대해 시공을 뛰어넘은 대화를 나눈다. 소비와 생산의 세계에서 한층 멀어졌으나, 무의미한 삶과 존재의 결핍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행복한 충만함을 줄 수 있는 초월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철학적 존재로서의 신과 우리가 어떤 관계에 놓일 수 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실존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시몬 베유의 말을 빌려 이야기한다.
“오늘날 종교가 처한 위기를 단순히, 특정한 믿음 내용이 타당성을 상실한 탓으로, 우리가 더는 신을 믿지 않는 탓으로, 또는 교회가 신뢰를 상실한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그 이유가 신의 부재를 일으킨다. 한 가지 이유는 주의(注意)의 몰락이다. 종교의 위기는 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보기와 듣기의 위기인 것이다. 신은 죽지 않았다. 과거에 신은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냈는데, 신의 드러남을 마주할 인간이 죽었다.”(12쪽)
고려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에서 철학과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한 저자는 베를린예술대학교 철학·문화학 교수를 지냈다. 「피로사회」 「관조하는 삶」 「불안사회」 등을 펴냈고, 2025년 ‘스페인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투리아스 공주상을 받았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