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 세우고 여성 인권 외친 선구자

순교자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 / 권은정 / 흐름출판사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 그러나 한반도에 주님의 빛이 깃든 것은 남북 분단과 일제강점기를 앞선다. 평양교구는 2027년 3월 17일 설립 10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출간된 「순교자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는 제6대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설정된 평양교구는 1943년 독립교구가 되었다. 그해 평양대목구장 서리로 임명된 홍 신부는 1944년 주교품을 받으며 두 번째 한국인 주교가 된다. 당시 평양교구를 맡았던 미국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추방된 상황에서 그의 깊은 영성과 지도력은 신앙적 희망과 민족적 자긍심을 전하며 교구 공동체를 하나로 단합하게 했다. 특히 해방 직후 일제에 빼앗겼던 주교좌 관후리대성당 터를 되찾아 공산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47년 성모 마리아께 봉헌할 새 대성당의 정초식을 거행했다. 일제와 공산 정권에 맞선 신앙의 선언이며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민족의 일치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책은 홍 주교가 태어난 1906년부터 평양 인민교화소에 투옥된 1949년까지의 기록이다.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나 1933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알리는 「가톨릭 연구강좌」를 시작으로 「가톨릭 연구」 등 출판사업을 주도했고, 평양교구 가톨릭운동연맹의 의장을 맡아 신자들이 스스로 교리에 대한 지식을 익히고 전교에 대한 열의를 갖도록 이끌었다. 특히 당시 70를 웃돌던 문맹률을 낮추는 데 앞장서 각 본당과 공소에 야학이 일게 했고, 가톨릭 내 여성 문제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며 그 고유한 가치와 영향력을 시사하는 글들로 만연했던 남존여비 풍토를 허무는데 앞장섰다.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 가톨릭평화신문 DB
사목 표어 ‘일어나 가자’(마태 26,46)를 내걸고 사랑과 열정으로 평양교구민을 이끈 홍 주교의 생애는 평양 인민교화소 투옥을 끝으로 공식적으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1950년 국군과 유엔군의 평양 탈환 직전에 교구 사제 및 평신도들과 함께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투옥에 앞서 공산 당국의 탄압 속에서도 목자로서 끝까지 양 떼와 함께하기를 결단한 사제 회합 중의 발언은 12명의 사제가 각자의 임지를 떠나지 않고 홍 주교와 함께 장렬히 순교한 역사적인 결단으로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홍 주교에게 차부제품을 받은 윤공희 대주교는 헌사에서 “홍 주교님은 이북과 이남의 평양교구민들에게 지난 세월 동안 다른 어느 주교님보다 오래 마음속에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생생하게 살아남아 계신 ‘우리의 영원한 목자’”라며 “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형극의 길을 걷는 평양교구를 위해 전구해달라”고 청했다.
서울대교구장 겸 제11대 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대주교는 발간사에서 “민족과 교회가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꿰뚫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다한 홍 주교님의 삶은 오늘의 한국 천주교회에도 깊은 울림과 귀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책은 「윤공희 대주교의 북한 교회 이야기」를 집필한 권은정(유스티나 루이제) 작가가 엮었다. 「평양교구사」, 「뮈텔 주교 일기」, 「북녘 땅의 순교자들」 등의 자료를 참고했고, 사진은 평양교구 사무국장 겸 이콘연구소 담당 장긍선 신부가 제공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