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이집트 북부 나일강 하류의 사막에는 ‘사막 교부(Desert Fathers)’라는 독수도승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막의 깊은 고독과 침묵 속으로 물러나 자신을 비우고, 엄격한 금욕 생활로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고자 했다.
오늘 우리에게 이 오래된 이야기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시공의 거리가 너무 멀어 낯설고 아득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본성적 욕망과 싸우며 하느님을 향해 나아갔던 그 치열한 삶, 거기서 길어 올린 지혜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토대가 되었고, 시공을 초월해 여전히 우리에게 가르침을 건넨다.
허성석 신부(로무알도·대구대교구 왜관본당 주임·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는 그동안 한국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막 교부의 금언과 초기 수도 영성을 소개하는 일에 매진해 왔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 「수도 영성의 기원」, 「사막에서 피어난 복음」을 비롯해 스무 권이 넘는 저서와 역서가 그 여정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2025년 한 해 동안 가톨릭신문에 연재한 ‘사막 교부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를 책으로 묶어 「사막 교부의 인생 지혜」(160쪽/1만5000원/들숨날숨)를 펴냈다. 지금까지의 작업이 원전 번역과 학술적 소개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번에는 자신의 삶과 체험을 바탕으로 사막 교부의 가르침을 25개 주제에 담아 쉽게 풀어냈다.
허 신부는 이 책을 “그리스도교 영성의 토대인 수도 영성, 그리고 수도 영성의 뿌리인 사막 교부 영성의 종합서”라고 소개하면서, “장기 연재가 부담스러워 처음에는 집필을 고사했지만, 결과적으로 사막 교부의 핵심 가르침을 종합하는 뜻깊은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책의 각 장 제목은 모두 명령형이다. ‘물러나라’, ‘침묵하라’, ‘머물러라.’ 사막에서 제자가 스승에게 다가가듯, 독자가 사막 교부에게 지혜를 묻고 답을 듣는 형식이다. 허 신부는 “우리의 청에 대해 사막 교부가 직접 가르침을 건네는 듯한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개된 주제 가운데 허 신부가 오늘날 가장 절실하다고 꼽는 것은 ‘삶이 말하게 하라’다. “말이 난무하는 오늘날, 삶이 없는 말은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에게서도 남에게서도 거듭 마주하는 것은 언행 불일치, 표리부동입니다. 화려한 언변보다 깊이 있는 진실한 삶이 더 목마른 시대라 생각합니다.”
4세기나 21세기나 인간이 씨름하는 욕망은 같다. 탐식, 음욕, 물욕, 명예욕, 권력욕, 분노, 나태, 허영심, 교만이 그러하다. 이 가운데 오늘의 현대인에게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악습으로 허 신부가 꼽은 것은 분노조절장애다. 처방은 단순하다.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분별하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며, 말하기보다 먼저 듣는 훈련을 익히는 일이다.
가장 깊이 공감한 금언을 묻자 허 신부는 포이멘 압바의 일화를 꺼냈다. “공동 기도 중에 조는 형제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자고 있는 어떤 형제를 보면 그의 머리를 내 무릎 위에 누이고 그를 쉬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131쪽) 사람이 정한 규정보다 하느님의 계명인 ‘애덕’이 앞선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사막 교부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전달하는 과정 자체가 제게도 신앙과 영성 생활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큰 울림이었다”고 했다. 이어 “독자들이 이 책을 덮을 때 복음의 깊이와 자유로움을 새롭게 깨닫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자부심을 품게 되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