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평양교구가 제6대 교구장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1906~?)를 새롭게 조명하는 책을 펴냈다.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주교이자 평양교구의 첫 한국인 교구장이었던 그의 생애를 통해 신앙과 순교적 행적을 되짚는다.
2027년 교구 설정 100주년을 앞두고 기획된 책은 단순한 인물전에 그치지 않는다. 일제 말기·해방·공산 치하로 이어지는 한국교회사의 가장 암울한 시기를 견뎌 온 홍 주교의 리더십과 신앙을 재조명하면서, 평양교구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데도 무게를 둔다.
홍용호 주교는 1906년 태어나 1933년 평양 관후리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가톨릭 연구」(후에 「가톨릭 조선」) 사장·주필로 활동하며 평양 대목구의 핵심 사목을 이끌었다. 1943년 평양대목구장 서리로 임명됐고, 이듬해인 1944년 주교 서품을 받은 홍 주교는 ‘일어나 가자(Surgite Eamus)’(마태 26,46)를 사목 표어로 삼고 일제 말기 탄압 속에서도 문맹 퇴치와 가톨릭운동연맹 활동을 통해 평신도 사도직을 선구적으로 실천했다.
평신도 대회와 출판 활동으로 신앙과 민족 자각을 일깨운 그의 행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앞당겨 구현한 것으로 재평가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일제에 징발됐던 관후리 주교좌성당 용지를 되찾고 성당 재건을 추진했다. 이는 교구민을 결속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일반 시민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산 당국의 탄압이 날로 심해지던 시절에도 홍 주교는 끝까지 교구를 떠나지 않았다. 목숨을 잃을 가능성을 충분히 알면서도 착한 목자로서 양 떼와 함께하기를 결단한 것이다. 홍 주교는 1949년 5월 14일 오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종신 서원 예정자들과의 면담을 마친 뒤 북한 내무상 사무실로 향하던 중 피랍됐다. 이후 행적은 공식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시복시성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대교구장 겸 제11대 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베드로) 대주교는 발간사에서 “민족과 교회가 어두웠던 시기를 꿰뚫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사명을 다한 삶은 오늘의 한국교회에 깊은 울림을 준다”고 밝혔다.
“‘주교님 그럼 평화가 오겠습니까?’ 홍 주교는 더욱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다 죽은 후에 오지.’ 주교님의 대답을 듣는 순간 박 수녀는 비로소 모든 불안과 초조함에서 풀려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타게 기다리던 평화는 현세에서 바랄 게 아니었다. 주님의 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교님이 말씀하고 계시지 않는가. 오직 순간순간을 가치 있게 사는 것이 수도자의 몫임을 깨달았다.”(2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