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소설가 안토니오 포가차로의 작품 「작은 옛 세계」에는 그 치유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 등장한다. 어린 딸의 죽음을 겪은 어머니 루이사다. 깊은 절망 속에서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자신을 파괴한 괴물이라고까지 생각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한 목소리가 들렸다. “운명의 책에서 한 페이지가 덮이면, 동시에 다른 한 페이지가 열린다.” 그 순간부터 희망이 자리 잡으며 변화가 시작됐다.
저자 가에타노 피콜로 신부는 이 사례를 들며,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과거에 짓눌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거나, 변화가 두려워 희망을 잃었을 때 식별의 여정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밝힌다. 현재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정직하게 살피는 것이 치유를 향한 첫걸음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성경, 영성을 기반으로 내적 치유의 여정을 아홉 단계로 안내한다. 단계마다 바르티매오, 나아만, 라자로 등 성경 인물의 이야기와 우화, 다른 책의 내용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성경과 영성·신학적 지식에 기반을 두면서도 심리적 차원의 접근을 병행한 점이 눈에 띈다.
각 단계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먼저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살피고, 성장을 막는 걸림돌을 직면하며, 내면의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분별한다. 저자는 나를 돕고 진정한 가치를 되찾아 주는 목소리와, 짓누르고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목소리를 구별하라고 말한다. 가장 가까운 출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앞’이 아닌 그분께서 부르시는 ‘뒤’에 있을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이어서 스스로를 보호한다고 여겼던 허울과 가면을 내려놓기를 권하고, 오래 억눌렸던 갈망을 다시 찾아가도록 이끈다. 저자는 영적 여정이란 하느님 앞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찾고, 나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주님과 함께 다시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피할 수 없는 나약함과 상처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것’, ‘쓸모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이 강조된다. 저자는 즉각적인 결과를 바라지 않고 기다리는 법을 익히며, 우정, 신뢰, 수난, 회복이라는 주제를 통해 잊고 있던 소중한 가치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으로 단계를 마무리한다.
‘기도’에 대해서는 ‘삶의 부서진 조각들을 주님 앞에 가져갈 수 있는 장소’로 묘사한다. 끊어진 관계와 부서진 꿈을 그대로 들고 나아가며, 그분께 삶의 조각들을 내어드리기만 한다면, 그것을 더 귀한 걸작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토닥인다.
영적 여정은 결코 직선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를 깨어있게 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인식하고, 그 자리에서 출발하여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길을 잃거나 발이 묶였다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억눌리고 낙담한 이들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저자가 건네는 말이다.
피콜로 신부는 ‘글을 시작하며’에서 “모든 영적 여정은 고통과 원망의 자리에서 벗어나라는 초대에서 시작된다”면서 “희망을 품고 여정을 걸어간다면 삶이 언제나 계속된다는 것을 깨닫고, 존재의 의미와 무엇보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