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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교만이 부끄러워” 청년 이해인 수녀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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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이해인 수녀(클라우디아·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녀회)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은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는 당대의 통념을 깼다. 수도자의 삶 속에서 길어 올린 기도와 성찰을 맑고 소박한 언어로 담아낸 이 시집은 출판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반세기 동안 수많은 독자의 책장에 꽂혀 위로와 희망을 전해 왔다. 이 수녀가 산문집 「해인의 바다」, 그리고 「민들레의 영토」 50주년 기념판 두 권의 책으로 그 세월을 되짚었다.


「해인의 바다」는 첫 시집이 세상에 나오던 1976년 무렵, 종신 서원 전후에 쓰인 일기와 피정 노트를 중심으로 엮은 산문집이다. 수도 공동체 안에서의 크고 작은 갈등, 피정 중에 정리한 묵상, 부산 광안리 바다와 골목을 오가며 남긴 메모들이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 수녀는 책머리에서 “예비 수녀 시절, 요한 23세 성인 교황의 「영혼의 일기」를 감명 깊게 읽으며 언젠가 제 수도원 일기의 일부가 공개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막연히 꿈꿔 왔다”고 밝혔다. 반세기를 간직해 온 그 바람이 이번 출간으로 비로소 결실을 본 셈이다.


형식 면에서 책은 1976년의 기록을 봄·여름·가을·겨울 네 부분으로 나누고, 5부에 2024~2025년의 짧은 글들을 덧붙였다. 20대의 기도문과 현재의 문장이 한 책 안에 나란히 놓이면서, 같은 작가의 어휘와 시선이 반세기를 사이에 두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부록에는 종신 서원을 앞두고 떠난 8일간의 피정에서 남긴 묵상 글이 실려 있다.


책 속에서 이 수녀는 스스로를 ‘벗기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느끼며, 느린 성격과 반복되는 실수, 공동체 안에서의 오해를 솔직하게 기록한다. “조그만 민들레가 되고 싶다 해 놓고도 장미의 화려함을 부러워하고, 남에게 필요 이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은밀한 교만이 늘 부끄럽다”는 고백도 숨기지 않는다.



독자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위로의 시인 이해인’이 아니라, 여느 신앙인과 다르지 않은 내적 동요를 겪는 한 젊은 수도자를 만나게 된다. 수도 생활을 하며 시를 쓰던 첫 마음, 시의 언어 뒤편에 자리한 내면의 여정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제목의 배경이 된 ‘바다’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민들레’와 함께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60여 년의 수도 생활 내내 곁을 지켜온 부산 광안리 바다는 시와 기도를 떠올리게 해 준 곳으로, 이 수녀에게 기도의 거울이자 하느님의 사랑이 들어오는 통로다. 표지도 이를 바탕으로 두 가지 디자인을 담았다. 반대로 접었을 때 이해인 수녀와 광안리 바다의 이미지가 함께 펼쳐진다.


이해인 수녀는 「민들레의 영토」 출간 5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수도원에 처음 들어와 살아 보려 했던 한 수도자 지망생의 내면 고백이며,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을 향한 그리움과 초심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인의 바다」가 그 초심이 어떤 흔들림 속에서 싹텄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라면, 「민들레의 영토」 50주년 기념판은 그 씨앗이 반세기 동안 맺은 열매다. 두 책을 나란히 읽을 때, 비로소 한 수도자이자 시인의 여정이 온전히 드러난다.


기념판에는 이해인 수녀의 50주년 기념 인터뷰와 오랜 세월 간직해 온 애장품, 이 수녀가 특히 마음에 남는 시로 꼽은 ‘민들레의 영토’, ‘장미의 기도’ 두 편이 안선재 수사(Anthony Graham Teague·떼제공동체)의 영문 번역으로 실렸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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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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