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에서 하느님께서 삶을 평가하실 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일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현대 유럽을 대표하는 신학자인 저자 파울 M. 쭐레너 신부가 이 책에서 독자에게 던지는 핵심 물음이다.
하느님을 믿는 이가 줄고 교회를 향한 시선이 차가워진 시대, 저자는 세속화된 유럽 사회를 배경으로 하느님 망각, 교회 위기, 신앙의 공적 책임을 다루면서 답 대신 질문을 택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길잡이 삼아 교회 문헌과 복음을 끌어와 독자를 신앙과 교회를 새롭게 성찰하는 자리로 초대한다. 한편, 영적 에너지와 창조적 역동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는 교회 현실을 직시하면서 교회를 “하느님의 구원 행위에 응답하며 하나의 봉사를 수행하는 공동체”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머리말과 3개 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의 교회와 신앙을 재점검한다.
1장 ‘열정의 하느님’은 현대 사회에서 ‘종교적’이라는 말이 부정적 뉘앙스를 띠는 현상과, 자신을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이라고 규정하는 이들이 늘어난 상황을 다룬다. 무신론자, 실용주의자, 신앙인을 막론하고 각자가 삶 안에서 하느님을 얼마나 가까이 두고 있는지가 핵심 질문으로 제시된다. ‘사랑하는 연대야말로 인간다움으로 나아가는 왕도’라는 저자의 언급처럼, 이 장은 신앙을 추상적 교리가 아닌 삶의 구체적 실천으로 되묻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기도에는 열심이지만 세상과 피조물 보전을 위한 실천에는 무관심한 신앙 태도를 비판한 대목도 함께 인용한다.
2장 ‘무언가주의 세상’은 체코 신학자 토마시 할리크의 개념 ‘무언가주의자’를 소개한다. 하느님을 세상의 창조주이지만 역사에는 개입하지 않는 익명적 ‘무언가’로 이해하며, 하느님 없는 세계가 더 인간적이고 도덕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흐름이다. 저자는 근대 이후 유럽 역사를 자유·정의·공존·평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로 규정하고, 그 투쟁의 주체로 여전히 하느님과 교회를 지목한다. 신자들이 평화를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을 경우, 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는 대목은 이 장의 핵심을 이룬다.
3장 ‘앗숨(Adsum) 교회’는 교회 제도와 개혁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교회를 예수 사건을 기억하려는 모임에서 출발해 제도화된 공동체로 설명하면서, ‘예수는 OK, 교회는 NO’라는 문구로 표현된 제도 교회에 대한 불신을 마주한다.
울리히 벡과 위르겐 하버마스를 인용해 제도의 본래 목적이 자유를 위한 장을 마련하는 것임을 상기시키고, 탈성직주의와 여성 성직자 임명, 평신도 역할 확대 등 교회 내 권력 구조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간다. 또 오늘의 교회가 겪는 현상을 몰락이 아닌 전환으로 규정한다. 콘스탄티누스 시대 유산으로서의 교회 형태가 저물고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태동하는 과도기라는 진단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글들은 단순한 단상이 아니라, 신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 분야 간의 경계에서 생겨난 대화와 경청, 통찰의 산물”이라며, “이 미니어처들은 삶과 현실, 교회와 세상, 하느님과 인간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며 독자 안에 새로운 질문과 해석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