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곡성군 섬진강 들녘에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이 있다. 아름다울 미(美), 열매 실(實), 난초 란(蘭). ‘아름다운 사람들이 희망의 열매를 맺는 곳’이란 의미다. 미생물 연구자 출신 ‘농부 과학자’ 이동현(안토니오) 대표가 2005년 설립했다.
그는 가족의 병을 계기로 ‘먹거리’, 즉 ‘사람을 살리는 음식은 무엇인가, 늘 먹어도 몸에 부담 없는 밥상은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섰다. 결국 곡성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국내 최초로 유기농 발아현미를 개발·상업화했고, 278여 종의 벼를 재배하며 다양한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는 농부로 자리 잡았다.
그러던 중 김탁환 소설가와의 만남이 이 대표의 삶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었다. 2019년 우연히 미실란에 들렀던 김 작가는 2020년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를 통해 미실란과 곡성의 서사를 소개했다.
이듬해인 2021년 곡성으로 집필실을 옮겨 농사를 짓고 글을 쓰며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 책방지기도 맡았다. 모든 게 서툰 도시 소설가였던 김 작가는 어느새 논과 밭을 스스로 일구는 마을 소설가가 되었다.
두 사람의 인연으로 농사는 이야기로 빚어졌고, 그 이야기는 사람과 마을을 이었다. 이번 책은 두 사람이 함께 써 내려간 생태 에세이다. 이 대표가 손 모내기와 친환경 농법이라는 고된 길을 걸으며 매달 기록한 농사 일기와, 김 작가가 미실란의 과거와 미래를 톺아보는 에세이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1월부터 12월까지 스물네 절기의 흐름을 큰 축으로 삼되, 단순한 연대기 구성에 그치지 않는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4년 동안 이 대표가 마주하고 기록한 같은 절기들을 나란히 묶었다. 읽는 이들은 매월 4년 치 절기를 함께 살피며 해마다 달라지는 풍경과 변함없는 풍경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소한과 대한의 고요 속에서 한 해를 준비하고, 망종과 하지의 분주함 속에서 생명을 땅에 맡기는 농부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대표의 글과 함께 실리는 김 작가의 에세이 제목은 ‘김탁환의 물꼬와 둠벙’이다. 벼농사에서 빠질 수 없는 두 자리인 물꼬와 둠벙의 의미 속에서, 그는 미실란 20년의 활동과 역할의 핵심을 따뜻한 통찰로 짚어낸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에세이를 통해 김 작가는 미실란을 지켜온 직원들의 목소리와 함께, 다음 세대에 물려줄 이동현 대표의 ‘천년 숲’의 철학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아무리 바빠도 무농약 유기농으로 품종을 연구하는 벼농사를 계속 지으려 합니다. 벼농사를 직접 짓는 이들이 살아가는 곳, 벼농사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 가치를 배우고 익히는 곳으로 계속 키워갔으면 합니다.”(75쪽)
미실란은 이제 쌀 생산 기업을 넘어 지역 생태·문화예술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 유치원생들이 논 체험을 하러 오고, 광주 지역 초등학생들과 ‘한 평 논’을 함께 짓는 생태 교육의 현장이 되었다. 매년 자력으로 개최하는 작은 들판 음악회와 섬진강마을영화제는 대표적 인구 소멸 지역이었던 곡성이 문화 활동을 통해 위기를 넘어서는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는 추천사에서 “이 책은 우리의 소중한 땀이 먹거리를 지키고 환경과 지구를 살리는 일임을, 또한 그 길은 혼자가 아니라 연대를 통해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