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1115년 프랑스 클레르보 계곡에 수도원을 세운 후, 유럽 각지에 수도원을 잇달아 설립하며 12세기 그리스도교의 중추적 인물로 자리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1090~1153) 성인이 평생 붙들었던 질문이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한 중세교회의 대표적 신학자다. 수도원장이었지만 교회의 여러 문제에 적극 개입하며, 영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수도자로서 또 수도자의 스승으로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불타는 삶을 전하려 애썼다.
「신애론」은 성인이 쓴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를 1부에 수록하고, 2부에는 원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엮은이의 해설을 함께 담았다. 그의 사랑 신학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는 책이다.
1부는 베르나르도가 아이메리코 추기경의 요청에 답하는 형식으로 쓴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 원문이다. ‘하느님을 왜 사랑해야 하는가’, ‘어떤 척도로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두 물음에서 출발해, 하느님의 복과 사랑의 본질, 사랑의 네 단계를 거쳐 체르토사 수도원 형제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서한으로 마무리된다.
베르나르도의 답은 단순하면서도 깊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께서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지극히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보다 더 마땅히 사랑받을 존재는 없으며, 하느님보다 더 큰 유익을 주는 사랑도 없다는 것이다.
베르나르도에게 인간은 진리를 향해 움직이는 존재이며 그 움직임이 곧 사랑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사랑이 단번에 완성될 수 없음을 직시한다. 사랑은 인간의 나약한 본성 안에서 점진적으로 정화되고 고양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그는 네 단계로 설명한다.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육체적 단계에서 출발해,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식별의 단계,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랑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거룩한 사랑의 단계에 이른다.
이 네 단계는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에서 출발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내적 여정이며, 동시에 사랑이 지녀야 할 방향과 기준을 제시한다. 성인은 인간의 사랑이 존엄성, 지식, 덕이라는 세 가지 선을 통해 성숙해 간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기준으로서의 정의를 강조한다. 하느님 사랑을 감정이 아닌 질서를 지닌 ‘여정’으로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 깊다.
2부는 암브로지오 M. 피아조니의 해제다.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해제는 베르나르도를 둘러싼 12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와 교회, 클뤼니 수도원과 시토회의 수도원 개혁 운동을 짚은 뒤, 베르나르도의 생애를 상세히 따라간다.
클뤼니와의 논쟁, 1130년의 교회 분열, 성전 기사단과의 관계, 제2차 십자군 전쟁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헤쳐 나간 한 수도자의 궤적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마지막 장에서는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의 원문과 출처, 출판 시기와 독자들, 구조와 내용을 꼼꼼히 해설하며, 베르나르도 영성의 유산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핀다.
오늘날 사랑은 점점 그 방향과 기준을 잃어 가고 있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지 않는 시대에, 9세기를 훌쩍 넘어 건너온 베르나르도 성인의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